본문 바로가기

어사빨

[어사빨](27)상대를 존중한다는 거

26회를 쓴 게 지난 6월인데, 믿을지 모르겠지만 30회까지 내용 구상은 이미 훨씬 전에 끝났어. 그런데 왜 쓰지 않고 개기느냐. 그 얘기를 먼저 하자.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대선 직후 '어르신께 사랑받는 좌빨' 프로젝트를 시작한 배경에는 몇 가지 성찰이 있어.


1. 우리끼리 뭉치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2. 우리가 옳다면, 왜 그토록 인정받지 못하는가.

3. 우리가 거둔 승리는, 우리만 누리는 승리가 돼야 하는가. 즉 우리가 당한 패배는 우리만 괴로운 패배가 돼야 하는가.


'어사빨' 프로젝트에서 가장 중요한 전제는 '패배 인정'이야. 그런데 요즘 나라 돌아가는 꼴을 보면 패배를 인정하기 꽤 어려운 상황이잖아. 이 와중에 "이제 됐고, 어르신께 사랑받는 좌빨이 되자"는 말이 얼마나 공허해. 그래서 키보드에 손꾸락이 올라가도 타이핑이 안 되더라고.


그런데 계속 고민하다가 보니까 마무리는 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왜? 필요할 때가 있을 거거든. 언젠가는….



여튼, 다시 시작이다. 연결해라.


오늘은 상대, 즉 적(敵)을 존중하는 것에 대한 얘기야. 벌써 인상부터 그릴 주변에 좌빨 나부랭이 꿈나무가 떠올라 웃음이 나기는 하지만… 여튼, 매우 중요해. 적을 이기려면 적을 먼저 존중해야 해. 떠받들라는 말이 아니라, 쟤가 나를 계속 이긴다면 그 이유가 분명히 있다, 그러니까 저 새끼가 비겁하고 야비하고 심판이 공정하지 않고 뭐 이런 식으로 퉁치면 마음은 편하겠지만 그만큼 이기기는 어려워져. 난 이 원리를 초등학교 때 깨우쳤어.



오락실 맞다.


오락실 간다고 부모가 용돈 줬을 리는 없고, 동네 빈병을 모아 슈퍼에 팔며 자금을 마련해 모니터 앞에 앉곤 했지. 얼마나 귀한 돈이었겠어. 그런 나에게 늘 좌절을 안기던 애들은 동전 넣은지 얼마 되지 않아서 꼭 나타나곤 했어.



아, 끝판왕… 뒌장!


내가 보스와 맞설 때마다 미사일이 공평하지 않다, 상대 에너지가 너무 많다, 피할 구석이 없다, 이 게임 만든 회사 사장은 사기꾼이다… 뭐, 이런 식으로 대응했다면 그냥 그 게임은 거기서 끝이었겠지. 하지만, 나는 적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래! 너거들 졸라 끝판왕답다 이것들아!


철저한(?) 분석으로 약점을 찾아 들어갔지. 화면을 꽉 채우는 미사일 세례 속에서도 화면 어느 구석에는 피할 수 있는 자리가 있거든(만든 분도 모를). 전문 용어로 '개판'이라고 해. 그것만 찾아내면 결과는 '게이머 승리'다.




뜻밖에도 우리 좌빨들이 적으로 여기는 그들은 오히려 좌빨에게 매우 착실하게 잘 배워. PC통신, 인터넷 게시판, 포털, SNS 등 온라인 커뮤니티 역사를 훑어보면 대부분 선점은 좌빨 쪽에서 한다. 촛불집회, ○○버스, 1인 시위 등 각종 집회 방식도 대부분 우리 좌빨들 기획에서 먼저 나오지 않나?(아! 촛불은 좀 다르구나) 그런데 조금만 지나면 저쪽에서 벤치마킹 다 하더라고. 그리고 극적으로 이용해먹는 쪽은 저쪽이야. 왜? 결국 모든 게 사람 싸움이고 조직 싸움인데, 저쪽은 그것만은 늘 돼 있거든.

정리하자. 이기고 싶은 상대를 무시, 멸시, 혐오 대상으로 삼지마. 속으로야 뭐라 하든 겉으로 대놓고 드러내지 말라고. 질 때가 많은 쪽이 이길 때가 많은 쪽을 사사건건 개무시할 때, 어르신들은 같잖다고 해. 그리고 어르신뿐 아니라 누구든 같잖은 대상에게는 절대 마음을 주지 않아. 





'어사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사빨](29)에필로그-2  (0) 2013.08.11
[어사빨](28)에필로그-1  (0) 2013.08.05
[어사빨](26)어르신을 웃겨봐  (0) 2013.06.06
[어사빨](25)인상 펴라  (0) 2013.06.05
[어사빨](24)진보 리퀘스트  (0) 2013.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