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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사빨

[어사빨](30)에필로그-3 그리고 안녕!

마지막이다. 나도 기어이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는 예상 못했어. 스스로 졸라 대견하게 생각해. 물론 꾸준히 읽어 준 당신들도 못지않게 대단해. 끝날 때 되니까 새삼스럽게 더욱 고마워.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하게 읽었으니 술 한 잔 사라고 하면 사 줄거야. 진심이다.



성별, 외모 따위는 따지지도 않는다구.


에필로그 마지막 키워드는 '공감'이다. 이거 한 번 생각해보자. 수년 전부터 예사로 '인문학 부재', '인문학적 소양', '인문학적 감수성' 같은 얘기 많이 하고 듣잖아. 처음에는 그런 얘기 들을 때마다 어쩐지 부끄러웠어. 못 배운 놈 같아서. 그런데 어느날 느닷없이 이런 생각이 드는 거야.


씨바, 인문학적 소양·감수성이라는 게 대관절 뭐야!


그 소양과 감수성이라는 게 인문학으로 분류된 책을 많이 읽고, 강좌 많이 들으면 샘솟나? 그렇다면 하다못해 그런 기회를 접할 수조차 없는 수많은 지구인은 아예 인문학적 소양이나 감수성과는 담을 쌓은 존재들일까? 뭔가 아니잖아. 그런 고민 끝에 혼자 정리했어. 인문학적 소양이란…


타자(他者), 즉 '나 아닌 다른 것'과 공감하는 능력.


그게 사람이든, 자연이든, 사회든, 이념이든, 가치든… 내 밖에 무엇인가와 공감하는 능력. 이건 책이나 토론, 강좌로 해결할 수 없는 능력이다. 훈련만으로 보장할 수 없는 능력이라고.



아마 <아바타>에서 탈 것을 길들이는 방법은 제압과 훈련이 아니었지.


돌이켜보면, 상당히 오랫동안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과 공감하지 못했어. 뭔가 부족하고 모자란 사람이라고 생각했거든. 아닌 척해도 상대가 다른 생각을 하게 된 '타당한' 과정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았던 거야. MB가 싫더라도 MB를 좋아하는 사람(MB 옆에서 떡고물 얻어먹는 새끼들 빼고)까지 혐오해서는 안 되는 거였어.


어르신(으로 대표되는 그들)은 그냥 열심히 살았고 뭔가 좋아할 수밖에 없는 계기가 있었으며 또 뭔가 혐오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던 거야. 그건 우리도, 한참 어린 것(?)들도 마찬가지 아닌가? 어쨌든 그 지점을 동의할 수는 없어도 어느 정도 공감할 수는 있어야 했다. 그래야 다른 발랄한 상상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연재 내내 그 고민에 빠졌던 것 같아.



웃어 주는 사람들이 늘 행복했으면 좋겠어.


느닷없는 말일지 모르겠지만 웃기는 사람이 좋아. 남을 웃길 줄 안다는 것은 듣는 사람이 공감하는 지점을 잘 찾아낼 줄 안다는 거야. 듣는 사람과 공감 주파수를 맞추는 능력이 있다는 거지. 그거 제법 괜찮은 재능이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웃어 주는 사람이 더욱 대단하게 보여. 별 거 아닌 말에도 해맑은 리액션을 보여주는 사람들 있잖아. 어쩐지 말하는 사람이 우쭐해질 정도로 공감할 줄 하는 사람. 리액션은 마음을 열 줄 아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매우 훌륭한 재능인 거 같아. 그리고…


웃기는 사람보다 웃어 주는 사람이 더 행복한 세상이면 좋겠다.


제법 길었던 '사고(思考) 여행'을 끝낼게. 그동안 고마웠어.




아빠가 뭐 하는지도 잘 모르는 7살 딸에게, 남편이 뭘 하든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아내에게, 졸필 퍼뜨려주신 모르거나 아는 분들에게, 느닷없이 잘 읽고 있다며 한말씀 던져주시는 선·후배 동료 여러분께… 그리고 웃을 줄 아는 모든 지구인들에게… 졸라 땡큐!


※ 글 끝에 이런 거 한 번 해보고 싶었어. 쫌 있어 보이더라고.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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