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

(665)
용기 아빠 양반, 혹시 그 얘기 알아? 약한 고양이는 머리에 상처가 있고 강한 고양이는 가슴에 상처가 있다더군. 어차피 싸우다 보면 상처가 생기기 마련이잖아. 상대에게 기죽어서 숙이면 상처가 머리에 남을 수밖에 없고 같이 발톱을 세워 엉켜 싸우면 가슴에 상처가 생긴다는 거지. 나 그 얘기 듣고 완전 감동 먹었잖아. 아빠 양반도 가슴에 상처를 남기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그리고 내가 발톱 좀 세우고 덤빈다고 성질 내지 말고, 그만 좀 뭐라 하고. 야옹.
아량 물론 내 온기를 가득 품은 털이 많이 흩날릴수록 아빠 양반이 괴로워 한다는 것쯤은 알아. 그래도 모처럼 만나 반가워서 책상에 올라갔더니 주저없이 물뿌리개로 미간을 맞추는 심보는 뭐냐고. 아빠 양반이 괘씸한 게 엄마나 누나 꼬맹이는 물뿌리개를 들어도 두세 번 쏘는 시늉을 하며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데 전혀 그런 텀을 주지 않는다는 거지. 요즘 실력도 늘어서 쏘는 즉시 미간에 딱 맞는데 기분이 참 더러워. 아빠 양반, 인간 관계도 그 따위로 하는가? 야옹.
선호 아빠 양반이 나를 탐탁잖게 여기는 거 잘 알아. 벌써 나를 쓰다듬는 엄마와 누나 꼬맹이, 아빠 양반 손길부터 다르거든. 정확하게 얘기하면 아빠 양반은 나를 좋아하는 누나 꼬맹이를 좋아하는 거지. 그래서 하는 얘기인데 잘 생각해 봐. 아빠 양반이 진보적 가치를 좋아하는 지, 진보적 가치를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지. 그거 헷갈리는 사람들 많더라고.
김영란법 어쩌다가 집에 빼빼로를 좀 쌓아두게 됐네. 학교에 몇통 들고 갔다고? 친구들과 잘 나눠 먹었다니 좋구나. 그런데 선생님은? “선생님은 주고 싶었는데 못 줬어.” “왜?” “김영란법 때문에. 선생님이 아예 안 받아.” 그 법 주먹만큼이나 가깝구나. 마음 대로 줄 수 없는 섭섭함 잘 알겠다만 세상이 더 나아지는 과정이라 믿고 이해하자. 이제 선생님 주려고 했던 거 어서 내놓거라.
불신 그거 있잖아. ‘차라리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지’라는 말. 내가 이 서사에서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은 실제 인간이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일 따위는 없다는 거야. 맡긴 적도 없으면서 맡기면 안 된다며 아예 속담까지 만들어서 놀고 있지. 신뢰 부문을 따지면 동물 피라미드에서 가장 밑바닥에 깔려 있어야 할 인간들이 말이야. 아빠 양반, 맡긴 적도 없으면서 불신하는 그런 짓 하지 마. 한 번 맡겼으면 믿어 보고. 야옹.
변화 참 우스운 게 아침에 10분 일찍 일어나는 사소한 변화조차 버거워하는 인간들이 다른 사람은, 조직은, 세상은 아주 한순간 벼락같이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나 봐. 아빠 양반, 그런 거 없어. 물론 큰 변화를 이끌어내는 능력이 있는 인간도 높은 곳 싫어하는 고양이 수 만큼은 있겠지. 아주 아주 드물게. 하지만, 그런 거 아빠 양반 능력은 아니야. 동거자로서 조언한다면 부딪히고 지치지 않으면서 잘 버텨내는 힘이나 길러. 야옹.
호기심2 문학, 미술, 음악 심지어 과학에 이르기까지 인간에게 고양이가 미친 영향은 막대해. 각 분야에서 고양이와 관련된 무엇인가를 떠올리지 못한다면 배은망덕한 거지 뭐. 인류 문명 발전사는 고양이가 준 영감을 인간이 잘 이해했던 시기와 그렇지 못했던 시기로 나눌 수 있어. 인류 문명 발전을 이끈 고양이 저력은 당연히 호기심에서 비롯해. 수시로 강조하지만 같은 삶에서 살아가는 것과 죽어가는 것은 호기심 유무로 갈려. 어쨌든 고작 알레르기 때문에 나를 받아들이지 못해 미개할 수밖에 없는 아빠 양반이 호기심은 좀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 야옹.
인사 엘리베이터에서 할아버지가 타니 인사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인사를 받는둥 마는둥 표정도 영 떨떠름한 게 좀 그렇더라. 내릴 때도 인사하는데 쳐다보지도 않고 가더구나. “예지, 저 할아버지 알아?” “아니, 몰라. 왜?” “예쁘게 인사하는데 받아주지도 않아서. 기분 나쁘네.” “내가 인사하는 게 중요한 거지. 받아주는 것은 할아버지 마음이고.” 대인의 풍모를 느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