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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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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애플 "예지, 좋은 사과." 후식으로 나온 파인애플을 너에게 내밀며 센스 자랑을 했단다. fine apple 괜찮았니? 너는 별 리액션 없이 파인애플을 아빠에게 내밀며 말하더구나. "아빠 휴대폰.""뭐?""아빠 휴대폰. 파인 사과." 파인 사과 세븐! 알아먹었단다. 너 정말 마음에 든다!
척추측만 학교 건강검진에서 척추측만이 우려된다는 진단이 나왔을 때는 꽤 당황했단다. 평소 비스듬히 누워서 책을 본다거나 태블릿을 할 때 따끔하게 뭐라 해야 했었나 후회도 했고. 다행히 심각하지는 않더구나. 교정운동 몇번 하면 바로잡을 수 있다더라. 물론 앞으로 관리는 중요하고. "아빠, 허리가 쭉 펴진 느낌이에요." 어떻게 한 번 교정치료 받고 바로 효과가 나타나겠니. 그나저나 네 척추와 함께 우리 살림도 쭉 폈으면 좋겠는데.
엄마가 살짝 구운 식빵에 스크램블 에그와 베이컨을 끼워 세 조각을 만들었을 때는 분명 아빠 몫도 있었을 테다. 그게 두 조각이든 한 조각이든 말이다. 복숭아를 우유와 함께 갈면서 잠깐 뒤돌아보니 세 번째 빵조각이 네 입으로 들어가더구나. 도대체 엄마는 네 성장속도를 어떻게 계산한다니? 재빨리 냉장고에서 푸딩을 꺼내 너에게 내밀 수밖에 없었다. "예지, 푸딩이랑 빵이랑 바꿔 먹자.""벌써 한입 먹었는데.""괜찮아, 괜찮다고!" 아빠 빈속으로 출근할 뻔했단다.
취향저격 "취저!" 아빠는 네가 선호하는 국물 양, 면발 식감, 계란 혼탁 정도를 정확하게 안다. 게다가 쪽파까지 썰어 올려 마무리하는 감각으로 미각과 후각은 물론 시각까지 사로잡았으니 어찌 감탄사가 터져 나오지 않을 수 있겠니. 무엇보다 라면이잖아. 엄지를 쭉 내밀며 내뱉은 두 음절 뜻은 처음 들어도 그냥 알아먹겠더라. 취.향.저.격. 아빠가 좀 한다.
송금 얼마 전에 만든 네 통장이 용돈 간수에 요긴해 보이더라. 친척에게 받은 현금을 엄마·아빠 믿고 맡겨봤자 결국 지하경제(?)로 빠지기 마련이다. 그래도 고모부에게 받은 용돈을 아빠에게 맡기더구나. "예지, 송금해줄까?""송금?""응, 아빠 통장에서 예지 통장으로 돈 보내는 거." 아빠 곁으로 바짝 달라붙네. 그동안 돈을 맡길 때마다 불안했나 보다. 휴대전화로 송금하는 과정을 확인한 너는 마지막에 진심을 담아 감탄사를 날리더구나. 아빠는 그렇게 빈 지갑에 현금을 확보했다. 길게 설명했다만 용돈깡이네.
뚝딱뚝딱 to 11살 이예지 양 엄마가 만든 쌀국수가 참 그럴듯했단다. 처음 해봤다면서 끙끙거리지도 않고 잘 만들더구나. 다른 음식도 그렇게 뚝딱뚝딱 만들어내곤 하지. 그러고 보니 너도 그림을 참 뚝딱뚝딱 그려내곤 하네. "엄마는 음식을 뚝딱뚝딱, 예지는 그림을 뚝딱뚝딱, 우리집 여성들은 참 뚝딱뚝딱 뭘 잘 만들어.""아빠는 뭘 뚝딱뚝딱 잘 만들어?" 그런 질문을 '기습'이라고 한다. 사실 예지를 뚝딱뚝딱 잘 만들었다 답하고 싶었다만 좀 애로틱해서 참았단다. from 자애롭고 꼼꼼한 아빠
반전 to 11살 이예지 양 엄마가 해 주는 떡볶이가 가장 맛있지만 아빠가 해 주는 것도 비슷하게 맛있다니 고맙다. 배려심보다 아빠를 참 잘 부려먹는다는 느낌은 받는 이유는 아직도 잘 모르겠네. "예지, 이렇게 맛있고 맵지도 않고 영양 가득한 떡볶이를 만든…" 너는 분명히 '사람은 누구'라는 질문을 예상했을 테다. 입술 끝에는 '엄마'라는 단어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더구나. 여기서 비범한 아빠는 한 발 더 나간단다. "만든… 사람을 구한 사람이 누구야?" 한참 입술 끝에 머물렀던 '엄마'라는 단어를 허공에 날리면서 너는 깊은 콧방귀와 함께 야물딱지게 말하더구나. "아빠 진짜 미워!" 마음이 아팠지만 재밌었단다. from 자애롭고 꼼꼼한 아빠
먹는 순서 to 11살 이예지 양 네가 먹을 컵 아이스크림과 아빠가 먹을 팥빙수를 주문했다. 아르바이트 언니가 팥빙수 숟가락을 두 개 챙겨 주더구나. 눈치가 좀 없다 생각했지만 굳이 막지는 않았단다. 아이스크림은 네 앞에, 팥빙수 그릇은 가운데 놓았잖아. 너는 줄기차게 팥빙수만 먹더구나. 가게 냉방 상태가 우수한지 아이스크림은 녹지도 않네. 그래, 짜장과 탕수육을 같이 시켰으면 우리 탕수육 먼저 먹는 게 맞다. 내 짜장은 천천히 먹는 거지. 순서를 정확히 아는 것 같아 다행이다. from 자애롭고 꼼꼼한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