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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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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노조 경남도민일보지부 노보-제58호
기대 “주말에 마늘 까야겠네. 간마늘이 다 떨어졌어.” 은근슬쩍 주말 작업량을 툭 던지는 것은 엄마 감독 장기란다. 마침 아빠 앞에는 우리집 일꾼 꿈나무가 앉아 있었지. “이번 주말 예지에게 기대가 커.”“왜?”“마늘 야무지게 잘 까잖아.”“내가 좀 하기는 하지.” 씨익 웃는 얼굴에 담긴 자신감이 참 미덥더구나. 한발 빼도 될성 싶었다. “아빠에게도 기대가 커.”“왜?”“얼마나 엄마를 위하나 볼 수 있잖아.” 속으로 죽어라고 까야겠다 복창했단다.
동시 학교 숙제로 쓴 동시 잘 읽었다. 외할머니를 향한 애틋한 사랑과 고마움, 자본주의에 종속된 어린이 삶이 잘 녹아 있더구나. 우리 할머니 - 이예지 학교 갔다와서 힘들면쪼르르 달려가는사우나따뜻하게 해 주고마실 것 챙겨주고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눠주는안방 사우나 모두 다 공짜 배 고플 때터덜터덜 찾아가는식당다양한 음식가리지 않고다 맛있는안방 식당 무조건 공짜
유소년 마트에서 야구 글러브를 한참 보고 있기에 의아했다. 이런 게 네 흥미를 끌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거든. “왜? 글러브 가지고 싶어?”“아니, 그게 아니라 이거 왜 유소년 글러브야? 유소녀는 야구 안 해?” 아주 날카롭고 타당한 지적이다. 언젠가 ‘유소년 체육관’ 얘기를 들을 때부터 그런 문제의식(?)을 품었다니 대견하구나. 유소년·유소녀 쓰지 말고 ‘어린이’로 바꾸면 좋겠다는 대안도 훌륭했다. 대안 없이 지르고 보는 어른도 많거든.
먹이사슬 모두 알다시피 고양이에게 혼자 보내는 시간은 아주 소중해. 그 시간을 방해하는 누나 꼬맹이가 거슬릴 수밖에 없지. 마구 쓰다듬거나 끌어안거나 하는데 도저히 견딜 수 없어 발로 밀어내면 섭섭함을 토로해. 자기 마음을 몰라 준다나? 더 웃긴 것은 아빠 양반이 누나 꼬맹이에게 하는 짓이 누나 꼬맹이가 나에게 하는 짓과 거의 같아. 누나 꼬맹이는 그건 또 못 견디거든. 아빠 양반도 섭섭하다 하소연하고. 그 모습이 짠해서 내가 다가가 몸을 부비면 아빠 양반은 아주 질색해. 이것들이 진짜. 야옹.
용기 아빠 양반, 혹시 그 얘기 알아? 약한 고양이는 머리에 상처가 있고 강한 고양이는 가슴에 상처가 있다더군. 어차피 싸우다 보면 상처가 생기기 마련이잖아. 상대에게 기죽어서 숙이면 상처가 머리에 남을 수밖에 없고 같이 발톱을 세워 엉켜 싸우면 가슴에 상처가 생긴다는 거지. 나 그 얘기 듣고 완전 감동 먹었잖아. 아빠 양반도 가슴에 상처를 남기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그리고 내가 발톱 좀 세우고 덤빈다고 성질 내지 말고, 그만 좀 뭐라 하고. 야옹.
아량 물론 내 온기를 가득 품은 털이 많이 흩날릴수록 아빠 양반이 괴로워 한다는 것쯤은 알아. 그래도 모처럼 만나 반가워서 책상에 올라갔더니 주저없이 물뿌리개로 미간을 맞추는 심보는 뭐냐고. 아빠 양반이 괘씸한 게 엄마나 누나 꼬맹이는 물뿌리개를 들어도 두세 번 쏘는 시늉을 하며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데 전혀 그런 텀을 주지 않는다는 거지. 요즘 실력도 늘어서 쏘는 즉시 미간에 딱 맞는데 기분이 참 더러워. 아빠 양반, 인간 관계도 그 따위로 하는가? 야옹.
선호 아빠 양반이 나를 탐탁잖게 여기는 거 잘 알아. 벌써 나를 쓰다듬는 엄마와 누나 꼬맹이, 아빠 양반 손길부터 다르거든. 정확하게 얘기하면 아빠 양반은 나를 좋아하는 누나 꼬맹이를 좋아하는 거지. 그래서 하는 얘기인데 잘 생각해 봐. 아빠 양반이 진보적 가치를 좋아하는 지, 진보적 가치를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지. 그거 헷갈리는 사람들 많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