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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노조 경남도민일보지부 노보 - 제59호
버럭 내가 아무 예고 없이 깨문다거나 발톱으로 할퀸다면 장담하건데 아빠 양반은 아주 난리를 칠거야. 무슨 이유가 있든 말든 상관없이. 그러니까 갑자기 엄마와 딸 꼬맹이 앞에서 버럭하지마. 갑자기 깨물고 할퀴는 것보다 더 상처받거든. 그리고 그 버럭이라는 표현 방식 말이야, 너무 미성숙하잖아. 야옹.
일과 삶 초벌 설거지를 하지 않으면 나중에 더 힘들다며 엄마 앞에서 뽐내는 아빠 양반이 참 가소로워. 수컷들이 효율적인 방법을 고민하는 이유는 설거지를 일로 생각하기 때문이지. 엄마에게 설거지는 다사다난한 일상에서 한 조각 같은 것이거든. 그냥 조용히 그릇이나 헹구셔. 야옹.
텔레파시 탁구장에 간 네가 집에 올 시간이 되자 엄마가 휴대전화를 들더구나. 안방에서 TV를 보면서도 말이다. 잊지 마라. 네가 앞으로 몇살을 더 먹든 엄마 눈에는 그저 아기란다. “예지, 어디야?”“엄마, 나 집이야.”“집? 예지야, 집 어디야?” 방문이 벌컥 열리며 네가 얼굴을 빼꼼 내밀더구나. 모녀 사이 2% 부족한 텔레파시조차 살짝 부러웠단다.
발톱 현명한 고양이는 사냥을 하거나 뭔가 꽉 움켜쥐어야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 때만 발톱을 드러내. 당연히 평소에는 숨겨두지. 인간은 어딘가 소속돼 제 안위가 보장되거나 자기 힘이 우세하다는 것을 인식할 때 상대에게 발톱을 드러내더군. 정작 홀로 사냥을 해야 하거나 위기에 빠졌을 때는 발톱을 감추고 몸을 한껏 움츠리는 주제에. 그런 인간들이 평소 큰소리는 또 으이구. 아빠 양반, 어디 쳐다보시나? 야옹.
마술 카드 한 벌을 반으로 나눠 고르게 했잖아. 고른 카드를 다시 4등분 해 식탁에 놓더구나. 가장 위에 있는 카드가 모두 에이스라서 깜짝 놀랐단다. 자신감이 붙은 너는 카드 한 장을 고르라더니 다시 섞은 뒤 한 장을 내밀었지. “이거?”“아니.” 흠칫한 너는 카드를 펼치더니 두 장을 꺼내더구나. “둘 중에 하나?”“아닌데.” 카드를 막 섞은 너는 침착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더구나. “아빠, 다시 골라.”“왜?”“실패했거든.” 더없이 쿨한 태도가 더 마술 같았단다.
탁구 일주일에 두 번 배우는 탁구에 재미를 붙여 다행이다. 처음에는 날아오는 공에 라켓을 대는 것도 버거워하더니 조금씩 요령이 붙나 보더구나. "이제는 그냥 제자리에서 치는 게 아니라 좌우로 움직이면서 치기 시작했어요." 좌우로 폴짝폴짝 뛰며 팔을 휘두르는 모습이 뭐랄까. 아주 다이나믹한 설명과 달리 꽤 정적이었으며 어떤 긴장감을 느끼기는 좀 어려웠단다. 점점 늘겠지 뭐.
디테일 엄마는 그래. 내가 울면 사료가 떨어졌는지, 간식이 필요한지, 안아 줘야 하는지, 새 물로 갈아야 하는지 잘 알아. 아빠 양반? 말도 마. 운다, 크게 운다, 이상하게 운다 세 가지로 구분해. 장난해? 자기가 나 때문에 힘든 것은 몇 년 전 일부터 상세하게 말할 줄 알면서 내가 자기 때문에 힘든 일은 모르쇠야. 미숙한 인간일수록 자기 문제만 섬세하고 남 일에 대범해. 성숙한 인간일수록 남 문제에 섬세하면서 자기 일에는 대범하더라고. 안 그런가, 아빠 양반? 야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