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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

(8)
텔레파시 탁구장에 간 네가 집에 올 시간이 되자 엄마가 휴대전화를 들더구나. 안방에서 TV를 보면서도 말이다. 잊지 마라. 네가 앞으로 몇살을 더 먹든 엄마 눈에는 그저 아기란다. “예지, 어디야?”“엄마, 나 집이야.”“집? 예지야, 집 어디야?” 방문이 벌컥 열리며 네가 얼굴을 빼꼼 내밀더구나. 모녀 사이 2% 부족한 텔레파시조차 살짝 부러웠단다.
발톱 현명한 고양이는 사냥을 하거나 뭔가 꽉 움켜쥐어야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 때만 발톱을 드러내. 당연히 평소에는 숨겨두지. 인간은 어딘가 소속돼 제 안위가 보장되거나 자기 힘이 우세하다는 것을 인식할 때 상대에게 발톱을 드러내더군. 정작 홀로 사냥을 해야 하거나 위기에 빠졌을 때는 발톱을 감추고 몸을 한껏 움츠리는 주제에. 그런 인간들이 평소 큰소리는 또 으이구. 아빠 양반, 어디 쳐다보시나? 야옹.
마술 카드 한 벌을 반으로 나눠 고르게 했잖아. 고른 카드를 다시 4등분 해 식탁에 놓더구나. 가장 위에 있는 카드가 모두 에이스라서 깜짝 놀랐단다. 자신감이 붙은 너는 카드 한 장을 고르라더니 다시 섞은 뒤 한 장을 내밀었지. “이거?”“아니.” 흠칫한 너는 카드를 펼치더니 두 장을 꺼내더구나. “둘 중에 하나?”“아닌데.” 카드를 막 섞은 너는 침착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더구나. “아빠, 다시 골라.”“왜?”“실패했거든.” 더없이 쿨한 태도가 더 마술 같았단다.
탁구 일주일에 두 번 배우는 탁구에 재미를 붙여 다행이다. 처음에는 날아오는 공에 라켓을 대는 것도 버거워하더니 조금씩 요령이 붙나 보더구나. "이제는 그냥 제자리에서 치는 게 아니라 좌우로 움직이면서 치기 시작했어요." 좌우로 폴짝폴짝 뛰며 팔을 휘두르는 모습이 뭐랄까. 아주 다이나믹한 설명과 달리 꽤 정적이었으며 어떤 긴장감을 느끼기는 좀 어려웠단다. 점점 늘겠지 뭐.
디테일 엄마는 그래. 내가 울면 사료가 떨어졌는지, 간식이 필요한지, 안아 줘야 하는지, 새 물로 갈아야 하는지 잘 알아. 아빠 양반? 말도 마. 운다, 크게 운다, 이상하게 운다 세 가지로 구분해. 장난해? 자기가 나 때문에 힘든 것은 몇 년 전 일부터 상세하게 말할 줄 알면서 내가 자기 때문에 힘든 일은 모르쇠야. 미숙한 인간일수록 자기 문제만 섬세하고 남 일에 대범해. 성숙한 인간일수록 남 문제에 섬세하면서 자기 일에는 대범하더라고. 안 그런가, 아빠 양반? 야옹.
충고 아빠 양반, 예리해져. 예민해지지 말고. 배려해. 굽신거리지 말고. 양보해. 빼앗기지 말고. 존경해. 비굴하지 말고. 현명해져. 잔머리 굴리지 말고. 그리고 웃어. 웃기는 놈 되지 말고. 야옹.
고정관념 감기 기운이 있는 네가 약국에서 기어이 검은색 단색 마스크를 골랐다며? 무슨 유행인가 했다. 아니나 다를까. 학교에서 한 친구가 ‘연예인병’이냐며 비꼬았다고? 네 반격이 매서웠더구나. “그거 고정관념 아니야?” 친구라고 가만 있었겠니? 그랬다면 시작조차 않았겠지. “요즘 연예인들 다 그거 끼고 다니던데.” 이미 물러설 단계를 넘어선 상황에서 네 재반격이 궁금했다. “그게 네 고정관념이라고.” 친구 처지에서 참 밉상이었겠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단다.
배려 별 보잘 것 없는 인간이지만 가끔 대견하다 싶은 게 있어. 바로 배려하는 모습이지. 인간들이 잘난 척하려면 이런 심성을 가꾸고 내세울 줄 알아야 해. 기술이 어떻고 지능이 어떻고 도구가 어떻고 같은 거 말고. 하지만, 역시 인간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게 내가 지켜보면 제멋대로인 인간일수록 더 배려받는 것 같더라고. 오히려 주변에서 쩔쩔매. 아닌가? 배려하는 사람일수록 나중에는 다른 사람들이 그 배려를 당연하게 여겨. 말이 돼? 아빠 양반도 조직생활 한다면서? 제발 배려하는 사람을 더 배려하도록 해. 참 안타까운 게 인간들은 자기에게 잘하는 사람에게 더 큰 상처를 줘. 자기도 모르게. 야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