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의 재발견]내친소… 아니, 내기소
내 여자 친구… 아니, 내 기자 동료들을 소개합니다.
<경남의 재발견> 여정은 10개월 정도 됩니다. 보잘 것 없지만 만만찮은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었던 힘으로 크게 두 가지를 꼽을 수 있겠습니다. 마감과 동료입니다.
신문사 기자에게 마감은 그냥 진리입니다. 만약 마감 없이 지금과 같은 결과물을 내놓으라면 얼마나 시간이 필요할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2~3주에 한 번이라는 엄한 마감 압박이 <경남의 재발견>을 만들어낸 가장 따가운 채찍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기자는 마감 때 멍멍이가 된다.
마감이 채찍이라면 당근은 함께 취재한 동료들입니다.
먼저 남석형 기자. 남 기자와 함께 일한 것은 이번 취재가 처음입니다. 그 전에는 같은 부서에서 일한 적도 없습니다. 사람을 알고 취재를 함께 한 게 아니라, 취재를 하면서 알게 된 사람입니다.
남 기자는 남들이 '예' 할 때 혼자 '아니오'라고 할 수 있는 성격입니다. 뭇사람들은 "성격이 더럽다"고 정리하겠지만, 기자로서는 아주 훌륭한 성격이다. 일을 할 때 잔꾀가 없고 스스로 필요한 일을 찾는 스타일입니다. 워커홀릭 끼가 다분합니다.
<경남의 재발견> 취재 결과물이 구슬 목걸이라면 저는 아마 실오라기를 찾는 작업을 했던 것 같습니다. 구슬을 찾는 일은 사실 남 기자 몫이었습니다. 자기 할 일 하면서도 내 작업까지 배려하는 남 기자 덕에 그나마 일이 수월했습니다.
사부작 티 안 내고 배려하면서 일할 줄 아는 남석형 기자.
그리고 박민국 기자. 우리 취재팀에서 사진과 동영상을 전담했습니다. 더불어 '리액션'을 담당했는데, 저와 남 기자가 별스럽지 않은 얘기를 해도 특별하게 만드는 기막힌 재주가 있습니다.
박 기자는 취재팀에서 최고 연장자이자 입사 순서로는 가장 막내입니다. 함께 취재를 시작했을 때 "이 기자님, 남 기자님" 이렇게 불렀습니다. 당장 호칭부터 정리했습니다.
"내가 입사 선배인 것은 어쩔 수 없으니 선배라고 하고, 박 선배는 한참 인생 선배니 우리도 박 선배라 합시다. 그게 편하겠습니다."
박 기자는 취재 내내 어머니 같은 존재였습니다. 워낙 옆사람을 잘 챙겨줬습니다. 사진·영상 취재는 물론 오만 잡다한 일은 박 기자가 다 했다고 보면 됩니다. 고성 왔으면 오토캠핑장에서 숙박해야 한다며 캠핑 장비를 모조리 챙겨온 사람도 박 기자입니다. 남 기자와 저는 텐트 세우는 말뚝 하나 준비하지 않고 캠핑을 했습니다. 추종을 불허하는 친화력으로 어느 지역에서나 낯선 취재원과 스킨십을 담당하기도 했습니다. 혹시 <경남의 재발견>에서 체온을 느낄 수 있다면 상당 부분은 박 기자 덕이라고 보면 됩니다.
맨날 우리 사진 찍어준다고… 정작 본인 사진 찾기는 어렵네.
여튼, 어디에선가 <경남의 재발견>은 '경남 사람 이야기'라고 정리한 적이 있습니다. 같은 구조로 'memory <경남의 재발견>'은 우리 취재팀 이야기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10개월 동안 함께 다니며 단 한 번도 부딪히지 않고 감정 상하지 않으면서 작업을 마무리했다는 거. 지나고 나니 벼락같은 복입니다.
사진 누른다고 결제되는 거 아니거든. 그냥 눌러 보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