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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2017년 11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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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to 11살 이예지 양 아가, 사랑이라는 게 단정하게 표현하기 어려운 개념인 것은 맞다. 그래도 네가 사랑이 뭐냐고 묻는다면 아빠 답은 간단하다. "그 사람 얼굴에서 늘 웃음을 보고 싶은 마음." from 자애롭고 꼼꼼한 아빠
단호함 to 11살 이예지 양 "엄마, 진짜 다른 사람이 내 얘기를 하면 귀가 간지러워?""아니." 네 질문에 대한 정답도 궁금했고, 엄마가 서슴없이 아니라고 답한 이유도 궁금했다. 그런데 엄마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더구나. 물론 그런 단호함이 네 엄마 장점이기는 하다. 아빠가 가끔, 아주 가끔 힘든 이유이기도 하고. from 자애롭고 꼼꼼한 아빠
가치 to 11살 이예지 양 "아빠, 그런데 왜 그냥 나가면 2만 원이고 씻고 나가면 5만 원이야? 줄려면 똑같이 주던지." 네가 보편적 복지 개념을 이미 체화한 듯해 흐뭇했다. 따로 가르친 적도 없는데 말이다. 저것들은 이런 일조차 급을 나눠 비용으로 환산해야 직성이 풀리나 보다. 돈이 곧 가치고 신념이지. "그나저나 예지, 너는 5만 원 줄 테니 엄마 밉다고 하라면 하겠어?" 순간 5만 원이 너무 큰돈 아닌가 걱정했다. 네가 덜렁 하겠다고 하면 어쩌나 싶었지. "아니. 돈과 바꿀 게 있고 안 바꿀 게 있지." 맞다. 그게 가치고 신념이다. from 자애롭고 꼼꼼한 아빠
인라인 스케이트 to 11살 이예지 양 방학 동안 네가 하고 싶은 것을 뭐 하나 제대로 한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큰 자전거로 바꿔주지도 않았고 아이스링크에 가서 스케이트를 타지도 않았지. 그렇다고 가족이 여행을 다녀온 것도 아니고. 대놓고 투정을 부리지는 않았지만 소멸되는 방학을 아쉬워하는 모습이 딱했다. "예지, 인라인 스케이트 살까? 자연스럽게 스케이트 연습도 되니 아이스링크에서 따로 연습할 필요도 없고, 언제든지 가까운 곳에서 탈 수도 있고.""좋아!" 네가 좋아하는 디자인, 색깔로 인라인 스케이트와 보호장비를 갖췄다. 당장 타고 싶어 매서운 바람에도 춥지 않다며 버티는 네 마음을 왜 모르겠니. 제자리에서 서기도 힘들 텐데 몇 걸음 옮기며 미끄러지는 게 곧 배우겠더라. 집에 들어오는 길에 아빠를 그윽하게 바라..
발치 to 11살 이예지 양 엄마 없는 주말에는 치킨이다. 마주보며 너는 콜라, 아빠는 와인. 언젠가부터 먹는 속도가 아빠와 다를 바 없구나. 괜히 긴장된단다. "아빠, 이거 뼈가 이상해." 자그마한 조각이 닭에서 나온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이상하기는 했다. 삼키지 않아서 다행이다. 하기야 어릴 때부터 가늘고 작은 생선뼈도 입안에서 발라낼 정도로 감각이 예민했으니. "아빠, 이쪽이 허전해." 입을 벌리며 가리킨 쪽을 보니 이가 하나 없고 피가 살짝 고여 있었다. 뭔가 느낌이 이상해 정상적인 닭뼈 사이에 뒀던 그 이상한 뼈를 기어이 찾아냈다. 이라고 생각하니 아주 정상적으로 생겼더구나. 아빠도 어렸을 때 사과 먹다가 이가 사과에 박혀서 나온 적은 있다만. "흐흐, 하나도 안 아퍼. 대박!" from 자애롭고 꼼..
배웅 to 11살 이예지 양 새해 첫날부터 당직까지 걸려서 일찍 나가게 됐다. 급하게 나가는데 화장실에서 네가 나오더구나. "회사 가?""응, 일찍 일어났네.""잘 다녀와. 사랑해.""아빠도 사랑해." 공중으로 날려 보내는 네 키스를 미쳤다고 피하겠니. 이렇게 부녀가 달달한 대화를 나누는 중에도 엄마는 주무시는 중이었다. 아내 빈자리를 딸이 채운다는 게 이런 것인가 싶었단다. 저녁에 보자. from 자애롭고 꼼꼼한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