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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짱]외전-이창희 진주시장은 절박하다는 게 뭔지 알까?

※ '신짱'은 '신문 짱'을 줄인 말이 아닙니다. '신문 읽는 언론노조 경남도민일보지부장 짱'을 줄인 말입니다. 오해 없기를 바랍니다. 신문을 발행하지 않는 날까지 글을 쓸 계획은 없으니 이번 편은 외전입니다. 2017년 3월 3일 자 경남도민일보입니다.



경남도민일보 2017년 3월 3일 자 4면.


어제 본 이 기사가 계속 마음에 걸립니다. 진주 김시민대교를 지탱하는 주탑 꼭대기에 한 노동자가 자리를 폈습니다. 높이가 120m라고 합니다. 아파트 40~45층 정도 되겠습니다. 실감이 잘 나지 않는다면 진해해양솔라파크 방문을 권합니다. 전망대가 있는 솔라타워에 바닥을 유리로 해놓은 곳이 있는데 그 높이가 120m 정도 됩니다.


기사를 보면서 6년 전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2011년 3월 강병재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조직위원회 의장이 거제 대우조선해양 남문 옆에 있는 송전탑 위에 올라갔습니다. 45m 높이 송전탑에 강 의장이 자리를 편 곳은 18m 지점이었습니다. 120m와 견주면 낮습니다만 송전탑에 흐르는 전압이 15만 4000볼트입니다. 강 의장은 해고 노동자 복직과 대우조선 비정규직 노동자 1만 5000명 정규직 전환을 요구했습니다.


강 의장이 송전탑에 오른 날 거제로 가서 2박 3일 동안 현장에서 속보를 보냈습니다. 당시 계속 고민했던 것이 바로 '절박함'이었습니다. 나이 50을 바라보는 노동자를 고압 송전탑으로 밀어올린 절박함이 과연 무엇일까 거듭 생각했습니다. 취재를 마치고 그 고민을 후기 형식으로 남겼습니다. 좀 길지만 그때 고민을 고스란히 담았기에 옮깁니다.




절박하다는 게 뭘까. 지난 7일 오후 취재 지시를 받고 거제로 가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새벽 2시, 나이 50을 바라보는 노동자를 고압 전류가 흐르는 송전탑 위로 밀어 올린 그 절박함은 뭘까.


해가 넘어가기 직전 거제 대우조선해양 남문 옆에 있는 송전탑 아래에 도착했다. 까마득한 높이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강병재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조직위원회 의장. 섬을 할퀴듯 부는 바닷바람이 어두워지면서 더욱 거세졌다. 45m 송전탑의 18m 지점. 강 의장이 서 있는 곳이었다. 고함을 치면 소리가 들리는 높이다. 하지만, 올라가기에는 까마득한 곳이다. 현장에 있는 소방대원은 이렇게 설명했다.


"고소공포증이 있으면 2m 지점에서 떨어요. 10m 정도면 누구나 공포를 느끼고요. 경험이나 훈련이 없는 사람은 15m 이상이면 더는 올라가지도 내려오지도 못하고 몸이 굳어버리지요."


강 의장은 아무 보조기구 없이 사다리 타듯 송전탑을 올랐다고 한다. 송전탑에는 고압 전류가 흐른다. 대우조선해양과 인근 지역에서 쓰는 모든 전기를 공급하는 송전탑 전압은 15만 4000볼트다. 근처에만 가도 뺨이 얼얼해질 정도라고 한다. 전도체가 조금만 잘못 휩쓸리면 큰 폭발을 일으킨다. 최소 안전 거리가 4m이다. 강 의장이 자리를 잡은 송전탑 발판은 고압정류장을 겨우 벗어나는 사각지대다. 몸 절반은 삶에, 나머지는 죽음에 걸쳐놓은 셈이다.


강 의장은 해고 노동자 복직과 대우조선 비정규직 노동자 1만 5000명 정규직화를 요구했다. 대우조선 노동조합이 송전탑 아래에 천막을 쳤다. 그 옆에 거제경찰서 천막이 섰다. 나중에는 거제소방서 천막도 들어섰다. 노동조합 간부와 경찰, 소방대원, 그리고 대우조선 사측 직원들은 계속 송전탑 아래에서 서성거렸다. 이들은 단 한 가지, 강 의장 안전이 절박했다. 강 의장에 대한 생각, 이번 사태를 보는 처지는 저마다 달랐다. 하지만, 강 의장이 무사히 땅을 디뎌야 한다는 것 한 가지에는 이견이 없었다. 노조는 강 의장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물품을 줄에 묶어 올려보냈다. 한 경찰이 말했다.


"고공농성자에게 물품을 올려보내는 것은 금기 사항이에요. 농성 장기화를 부추기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사람을 죽게 할 수는 없으니까."


첫날밤이 깊어졌다. 현장 상황은 1시간 간격으로 기사를 보냈다. 고압 전류는 일반적인 전화 통화에도 잡음을 끼워 넣었다. 무선 인터넷 사정도 여의치 않았다. 현장을 벗어나지 않고 소식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은 스마트폰 덕이었다. 스마트폰이 잡아낸 전파는 노트북에 정리한 내용을 기대 이상으로 잘 전했다. 대우조선 노조에서 설치한 천막 속에서 8일 새벽 2시가 지나자 노트북을 덮었다.


오전 6시를 조금 넘기자 송전탑 위에서 확성기 소리가 들렸다. 강 의장이 움직이는 신호였다. 잠시 민중가요가 흘러나오더니 이내 그쳤다. 오전 7시에 맞춰 강 의장이 거제시민과 노동자에게 호소하는 글을 읽어내렸다. 높은 곳에서 거센 바람과 엉켜 나오는 확성기 소리는 분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천막 아래에서는 강 의장이 무사하다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경찰 한 명이 위를 올려다보며 심드렁하게 말했다.


"하는 짓을 보면 미운데… 그래도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하면 일단 반갑기는 해요."


송전탑 아래에 모인 사람들이 각자 상황을 점검했다. 그리고 경찰과 소방관과 사측 직원과 노조는 각자 방식대로 소식을 전했다. 햇살이 나자 굳은 몸을 풀려는 듯 강 의장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래에서는 각자 대책 마련에 분주했다. 대우조선 사측에서는 송전탑 주변 나무를 잘라내고 안전그물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효용성에 대한 이견은 있었지만, 사측도 이 정도까지가 배려라는 듯 묵묵하게 작업을 마쳤다. 노조가 판단한 첫 과제는 소통 창구 마련이었다.


오후 3시 30분 서행철 고용부장이 송전탑에 올랐다. 서 부장 몸에 온갖 안전장치가 감겼다. 강 의장과 마주앉은 서 부장은 1시간 40분 정도 이야기를 나눴다. 첫 의사소통이었다. 오후 5시 30분에 내려온 서 부장은 상황을 낙관하지도 비관하지도 않았다.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 한 가닥은 잡은 것 같다고 말했다. 다시 노조 집행부가 분주하게 움직였다. 첫날 어설프게 설치해 밑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막지 못했던 노조 천막은 더욱 견고해졌다. 쉽게 매듭이 풀릴 것 같지 않은 농성, 둘째 날 밤이 깊어졌다.


9일 아침 강 의장은 무사하다는 소식을 전했다. 무전으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오히려 전날보다 나았다. 송전탑 아래에서는 또 제각각 소식을 전했다. 햇살이 나자 강 의장은 천천히 움직이며 몸을 풀었다. '비정규직 노동자 정규직화'라는 큰 구호 속에서 강 의장 개인이 떠안은 절박함을 눈치채기는 쉽지 않았다. 그리고 기약 없는 기다림에 지쳐가는 사람들이 내뱉는 하소연은 점점 잦아졌다.


"저렇게 올라가서 문제가 해결되면 누구라도 송전탑에 올라가겠네. 자기보다 더 어려운 사람도 있을 텐데…."


강 의장은 그저께, 어제처럼 오늘도 서 있었다. 좁은 발판 위를 빙글빙글 돌면서 걷다가 앉기를 되풀이했다. 강 의장에게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 물품을 공급하는 노조, 송전탑 아래서 상황을 점검하는 사람들도 3일째 같은 일상을 반복했다. 오후 1시가 지나자 본사 복귀 지시가 들어왔다. 천막 안에서 뒹굴던 노트북과 수첩 등을 챙겼다. 


아직도 강 의장이 홀로 짊어진 절박함이 뭔지 짐작하기 어렵다. 비정규직 동지 걱정? 자기 일자리 걱정? 부조리한 회사, 또는 사회를 향한 경고? 모르겠다. 뭔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지금 그 절박함은 송전탑 아래에 있는 사람들보다 훨씬 높은 곳에서 무겁게 버티고 있다. 그 사실 한 가지만으로 마음이 무겁다.




6년이 지나 120m 높이에 걸친 절박함 역시 그 밀도를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6년 전 그 자리에도, 오늘 이 자리에도 "저렇게 문제가 해결되면 누구라도 올라가겠네" 같은 핀잔이 나올 모르겠습니다. 절박함이라는 게 그렇습니다. 내 것이면 한없이 커지고 남 것이면 보잘 것 없기 마련입니다.


이창희 진주시장은 절박하다는 게 뭔지 알까요? 언젠가 다른 진주시장이 유등축제 가림막을 치울지도 모릅니다. 이 시장은 부당한 행정이라며 120m 높이 주탑에 오를 수 있을까요? 그날이 온다면 공식적으로 사과하겠습니다.


단호한 방법을 택한 김영식 씨가 그를 한없이 짓누르는 무거운 절박함에서 곧 벗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무게를 나누는 일은 주탑 아래 사람들 몫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