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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복(猫福) 아빠라는 양반이 아침에 일어나면 화장실로 향한다는 것쯤은 이미 알아. 간단한 스킨십으로 생명끼리 교감하며 하루를 시작했으면 하는 나는 화장실 문 앞에서 보통 이런 자세로 엎드리곤 하지. 아빠 양반, 한 번 쓰다듬고 지나가라고. 그런데 저 인간이 뭐라는 줄 알아? 비키라는 거야. 발 닦는 매트인 줄 알았다고. 그러면서 발로 쑥 미네. 내가 성숙하지 않은 고양이었다면 당장 깨물었겠지. 아빠 양반은 묘복(猫福)이 있어. 야옹.
가방 "여보, 요즘 애들 들고다닌 거 있잖아. 젤리 같은 거.""이거? 액체괴물." 엄마가 대답하기 전에 먼저 가방에서 꺼내더구나. "어, 혹시 손에서 막 돌리는 그런 것도 있어?""아, 스피너." 또 가방에서 꺼내더구나. "가방에 없는 게 없네. 너 들고다니는 선풍기...""응, 이거? 헤헤." 도대체 그 보조가방에 없는 게 뭐냐? 그나저나 책은 어디에 담고 다니니? 참 신기하면서 궁금했단다.
급식 사람이 참 한심하다는 것은 무상급식 논란만 봐도 쉽게 알 수 있어. 우리 고양이 세계에서 급식은 간단해. 집안에서 가둬 키우면 무상급식이고, 집밖에서 자기 마음대로 살면 스스로 해결해야 해. 애초에 '유상급식' 자체가 존재하지 않지. 학교 안에서 가둬 키우면 무상급식, 학교 안 다니면 알아서 해결하는 거야. 가둬놓고 밥값 받는다고? 이게 말이 돼? 저 몰상식한 아빠도 그 정도는 알아. 나에게 밥을 주면서 밥값을 일부라도 받는 무식한 짓은 안 한다고. 그나저나 아빠 양반,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든다는데 지금 뭐하는 거야? 야옹.
밤은 얼마나 훌륭한가. 나는 한밤 중에 별을 보며 생명과 우주가 교감하는 그 고요를 즐겨. 사고는 한없이 뻗어나가고 깊어지지. 그런데 저 인간이라는 것들은 그 소중한 시간에 잠을 퍼 자. 가끔 나만 알 수밖에 없는 그 즐거움을 기꺼이 나누고자 방문을 두드리면 아빠 양반은 오히려 자라고 역정이야. 미쳤나 봐. 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어. 더 어이 없는 것은 잠들기 더할나위 없이 좋은 햇살이 들어올 때부터 이것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는 거지. 정작 잠들어야 할 시간에 말이야. 무슨 생체리듬이 그 따위인지 모르겠어. 인간이 아무리 기를 써도 고양이만큼 성숙할 수 없는 이유라고 생각해. 자야 할 시간에 움직이고 사색할 시간에는 퍼 자고 있으니. 야옹.
교양 아빠 양반이 오늘 아침 유난스럽게 클래식 음악을 튼다. 물론 클래식은 고결한 내 성품에 딱 맞는 취향이야. 그런데 고양이가 지닌 고결한 품성 따위는 개 취급(이거 진짜 최악이다)하는 아빠가 내 취향에 맞추다니. 의자에 앉아서 생각하는 꼴을 보니 뭔가 고민이 있어 보여. 그렇다고 아빠 양반이 국내 미디어 환경에서 지역신문이 나가야 할 길이라거나, 북미 긴장(같은) 상황에서 대한민국이 취해야 할 스탠스, 탈원전 에너지 운동이 가야 할 방향 등을 고민할 리 없잖아. 딱 보니 아침 설거지가 많다고 궁시렁거리네. 그러면 그렇지 참 한심해. 교양을 기초부러 가르칠 수도 없고. 야옹.
감수성 나도 인간이면 피아노 친다. 발가락이 이 모양이니 연주는 할 수 없고 그저 피아노 위에 기대는 것으로 음악적 감수성을 달랠 뿐인데, 저 아빠 양반은 보자 마자 내려오란다. 털 치우기 귀찮다고. 아주 교양머리가 근본부터 되먹지 않았어. 야옹.
의문 아빠 양반은 내가 의자에서 좀 쉬면 물뿌리개를 뿌려. 내가 물벼락 맞는 건 못 견디거든. 도무지 고양이를 섬기는 자세가 안 돼 있어. 근본부터 글러먹었지. 반면 우리 엄마는 내가 의자에서 쉬면 이렇게 쿠션을 받쳐 줘. 어떻게 저 아빠라는 수컷이 엄마같은 분을 만났는지 모르겠어. 야옹.
귀가 아빠 양반이 새벽에 들어오길래 반겨줬더니 화들짝 놀라네. 여튼 아빠 양반은 어떻게 성장했는지 생명에 대한 기본 예의가 없어. 언제쯤 정신 차릴까. 야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