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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양이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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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럭 내가 아무 예고 없이 깨문다거나 발톱으로 할퀸다면 장담하건데 아빠 양반은 아주 난리를 칠거야. 무슨 이유가 있든 말든 상관없이. 그러니까 갑자기 엄마와 딸 꼬맹이 앞에서 버럭하지마. 갑자기 깨물고 할퀴는 것보다 더 상처받거든. 그리고 그 버럭이라는 표현 방식 말이야, 너무 미성숙하잖아. 야옹.
일과 삶 초벌 설거지를 하지 않으면 나중에 더 힘들다며 엄마 앞에서 뽐내는 아빠 양반이 참 가소로워. 수컷들이 효율적인 방법을 고민하는 이유는 설거지를 일로 생각하기 때문이지. 엄마에게 설거지는 다사다난한 일상에서 한 조각 같은 것이거든. 그냥 조용히 그릇이나 헹구셔. 야옹.
발톱 현명한 고양이는 사냥을 하거나 뭔가 꽉 움켜쥐어야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 때만 발톱을 드러내. 당연히 평소에는 숨겨두지. 인간은 어딘가 소속돼 제 안위가 보장되거나 자기 힘이 우세하다는 것을 인식할 때 상대에게 발톱을 드러내더군. 정작 홀로 사냥을 해야 하거나 위기에 빠졌을 때는 발톱을 감추고 몸을 한껏 움츠리는 주제에. 그런 인간들이 평소 큰소리는 또 으이구. 아빠 양반, 어디 쳐다보시나? 야옹.
디테일 엄마는 그래. 내가 울면 사료가 떨어졌는지, 간식이 필요한지, 안아 줘야 하는지, 새 물로 갈아야 하는지 잘 알아. 아빠 양반? 말도 마. 운다, 크게 운다, 이상하게 운다 세 가지로 구분해. 장난해? 자기가 나 때문에 힘든 것은 몇 년 전 일부터 상세하게 말할 줄 알면서 내가 자기 때문에 힘든 일은 모르쇠야. 미숙한 인간일수록 자기 문제만 섬세하고 남 일에 대범해. 성숙한 인간일수록 남 문제에 섬세하면서 자기 일에는 대범하더라고. 안 그런가, 아빠 양반? 야옹.
충고 아빠 양반, 예리해져. 예민해지지 말고. 배려해. 굽신거리지 말고. 양보해. 빼앗기지 말고. 존경해. 비굴하지 말고. 현명해져. 잔머리 굴리지 말고. 그리고 웃어. 웃기는 놈 되지 말고. 야옹.
배려 별 보잘 것 없는 인간이지만 가끔 대견하다 싶은 게 있어. 바로 배려하는 모습이지. 인간들이 잘난 척하려면 이런 심성을 가꾸고 내세울 줄 알아야 해. 기술이 어떻고 지능이 어떻고 도구가 어떻고 같은 거 말고. 하지만, 역시 인간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게 내가 지켜보면 제멋대로인 인간일수록 더 배려받는 것 같더라고. 오히려 주변에서 쩔쩔매. 아닌가? 배려하는 사람일수록 나중에는 다른 사람들이 그 배려를 당연하게 여겨. 말이 돼? 아빠 양반도 조직생활 한다면서? 제발 배려하는 사람을 더 배려하도록 해. 참 안타까운 게 인간들은 자기에게 잘하는 사람에게 더 큰 상처를 줘. 자기도 모르게. 야옹.
먹이사슬 모두 알다시피 고양이에게 혼자 보내는 시간은 아주 소중해. 그 시간을 방해하는 누나 꼬맹이가 거슬릴 수밖에 없지. 마구 쓰다듬거나 끌어안거나 하는데 도저히 견딜 수 없어 발로 밀어내면 섭섭함을 토로해. 자기 마음을 몰라 준다나? 더 웃긴 것은 아빠 양반이 누나 꼬맹이에게 하는 짓이 누나 꼬맹이가 나에게 하는 짓과 거의 같아. 누나 꼬맹이는 그건 또 못 견디거든. 아빠 양반도 섭섭하다 하소연하고. 그 모습이 짠해서 내가 다가가 몸을 부비면 아빠 양반은 아주 질색해. 이것들이 진짜. 야옹.
용기 아빠 양반, 혹시 그 얘기 알아? 약한 고양이는 머리에 상처가 있고 강한 고양이는 가슴에 상처가 있다더군. 어차피 싸우다 보면 상처가 생기기 마련이잖아. 상대에게 기죽어서 숙이면 상처가 머리에 남을 수밖에 없고 같이 발톱을 세워 엉켜 싸우면 가슴에 상처가 생긴다는 거지. 나 그 얘기 듣고 완전 감동 먹었잖아. 아빠 양반도 가슴에 상처를 남기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그리고 내가 발톱 좀 세우고 덤빈다고 성질 내지 말고, 그만 좀 뭐라 하고. 야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