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는 고양이라니까

(60)
아량 물론 내 온기를 가득 품은 털이 많이 흩날릴수록 아빠 양반이 괴로워 한다는 것쯤은 알아. 그래도 모처럼 만나 반가워서 책상에 올라갔더니 주저없이 물뿌리개로 미간을 맞추는 심보는 뭐냐고. 아빠 양반이 괘씸한 게 엄마나 누나 꼬맹이는 물뿌리개를 들어도 두세 번 쏘는 시늉을 하며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데 전혀 그런 텀을 주지 않는다는 거지. 요즘 실력도 늘어서 쏘는 즉시 미간에 딱 맞는데 기분이 참 더러워. 아빠 양반, 인간 관계도 그 따위로 하는가? 야옹.
선호 아빠 양반이 나를 탐탁잖게 여기는 거 잘 알아. 벌써 나를 쓰다듬는 엄마와 누나 꼬맹이, 아빠 양반 손길부터 다르거든. 정확하게 얘기하면 아빠 양반은 나를 좋아하는 누나 꼬맹이를 좋아하는 거지. 그래서 하는 얘기인데 잘 생각해 봐. 아빠 양반이 진보적 가치를 좋아하는 지, 진보적 가치를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지. 그거 헷갈리는 사람들 많더라고.
불신 그거 있잖아. ‘차라리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지’라는 말. 내가 이 서사에서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은 실제 인간이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일 따위는 없다는 거야. 맡긴 적도 없으면서 맡기면 안 된다며 아예 속담까지 만들어서 놀고 있지. 신뢰 부문을 따지면 동물 피라미드에서 가장 밑바닥에 깔려 있어야 할 인간들이 말이야. 아빠 양반, 맡긴 적도 없으면서 불신하는 그런 짓 하지 마. 한 번 맡겼으면 믿어 보고. 야옹.
변화 참 우스운 게 아침에 10분 일찍 일어나는 사소한 변화조차 버거워하는 인간들이 다른 사람은, 조직은, 세상은 아주 한순간 벼락같이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나 봐. 아빠 양반, 그런 거 없어. 물론 큰 변화를 이끌어내는 능력이 있는 인간도 높은 곳 싫어하는 고양이 수 만큼은 있겠지. 아주 아주 드물게. 하지만, 그런 거 아빠 양반 능력은 아니야. 동거자로서 조언한다면 부딪히고 지치지 않으면서 잘 버텨내는 힘이나 길러. 야옹.
호기심2 문학, 미술, 음악 심지어 과학에 이르기까지 인간에게 고양이가 미친 영향은 막대해. 각 분야에서 고양이와 관련된 무엇인가를 떠올리지 못한다면 배은망덕한 거지 뭐. 인류 문명 발전사는 고양이가 준 영감을 인간이 잘 이해했던 시기와 그렇지 못했던 시기로 나눌 수 있어. 인류 문명 발전을 이끈 고양이 저력은 당연히 호기심에서 비롯해. 수시로 강조하지만 같은 삶에서 살아가는 것과 죽어가는 것은 호기심 유무로 갈려. 어쨌든 고작 알레르기 때문에 나를 받아들이지 못해 미개할 수밖에 없는 아빠 양반이 호기심은 좀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 야옹.
인정 도도한 자태 때문에 늘 오해받지만, 나도 따스한 품과 손길 그리고 애정 가득한 칭찬 한마디가 늘 그리워. 흔한 고양이처럼 눈 말똥말똥 동그랗게 뜨며 애정을 구걸해 볼까 생각한 적도 있지. 하지만, 그런 욕구를 외부에 맡기고 의지할수록 자신을 성찰하기 어렵거든. 그것을 아는 게 고양이와 인간이 다른 점이고. 아빠 양반, 뭘 좀 잘했다고 흥분할 거 없어. 잘못했다고 그렇게 기죽지도 말고. 그나저나 아침에 한 번쯤은 좀 성의 있게 쓰다듬으면 안 될까. 이 인정머리 없는 양반아! 야옹.
라이프 집 크기 줄이고 살림 좀 줄이고 덜 가지려 하고 살면서 중요한 가치에 집중하는 어쩌고저쩌고를 ‘미니멀 라이프’라 하다고? 그 얘기를 듣고 진짜 인간들 과장 하나는 끝내준다고 생각했어. 그런 게 미니멀 라이프면 대부분 동물은 ‘미크론 라이프’ 정도 되겠지. 당장 화장실만 봐도 그래. 나야 플라스틱 통에 모래만 채우면 끝이지만 인간들 화장실은 변기에, 세면대에, 샤워기에 뭐 그렇게 할 게 많은지. 그나저나 아빠 양반, 화장실은 왜 못 들어오게 하냐고! 야옹.
동경 밖을 향한 동경은 안정을 확신할 수 있는 안에서 비롯하는 것 같아. 제한된 공간에서 늘 위협받고 뭔가 경계해야 한다면 밖을 내다 볼 여유 따위는 없겠지. 그런 점에서 자신이 누리는 일상에 담긴 가치를 무시하거나 외면하는 인간에게 고양이 같은 고결함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그러니까 아빠 양반, 어서 사료 그릇 좀 채우라고! 야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