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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

(22)
고통 고양이는 타고난 균형감각 덕에 웬만한 높이에서 떨어져도 충격받는 일은 없어. 그렇다고 누나 꼬맹이가 미끄러져서 넘어질 때 아프지 않겠다고 생각하지도 않아. 우리 같은 운동신경이 아무 동물에게나 허락되지는 않으니까. 타자가 겪는 고통을 그대로 공감하는 게 고양이가 지닌 미덕이지. 하지만, 인간은 자기가 느끼지 못하는 고통은 별 거 아니라고 여기나 봐. 자기 힘들 때만 아주 끙끙 앓지. 아빠 양반, 제발 자기 힘든 거 오버하지 말고 남 힘든 거 얕잡아 보지 마. 미성숙하게 보이니까. 야옹.
결핍 누구에게나 결핍은 있어. 인간보다 뛰어난 신체 능력을 갖췄으면서 스스로 깊게 성찰할 줄 아는 고양이도 종종 결핍을 겪지. 타자에 대한 이해가 아주 부족한 아빠 양반은 고양이가 느끼는 결핍을 먹는 것과 스킨십 두 가지로만 분류하는데 미칠 노릇이야. 아빠 양반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섬세한 감정 교류로만 채울 수 있는 결핍인데 말이지. 이제 저 양반에게는 기대를 접어야 할 것 같아. 그런 아빠 양반이 주변 인간이 겪는 결핍을 아주 복잡하게 해석하는 꼴을 보면 꽤 우스워. 내가 보기에는 대부분 애정결핍으로 수렴하거든. 야옹.
심쿵 갑자기 품으로 달려들더니 이마로 가슴팍을 들이받더구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네가 씨익 웃으며 하는 말에 당황했다. “심쿵!” 아무리 생각해도 상황에 적확한 말이다만, 이럴 때 쓰는 말이 맞기는 맞냐?
인간들이 어쩌자고 털을 버리고 번거로운 옷을 택했는지는 잘 모르겠어. 도도하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내 회색빛 털은 한여름에 벗지 않아도 되고 한겨울에 껴입지 않아도 돼. 그러니까 엄마가 밤에 기온이 좀 떨어졌다고 모포를 덮어주는 것은 좀 오버지. 그래도 가만 있는 이유는 모포보다 더 따뜻한 마음이 전해지기 때문이야. 아빠 양반에게는 좀처럼 느낄 수 없는 심성이거든. 그러니까 아빠 양반, 새옷 사이즈 확인하자 하면 군소리 말고 좀 입어. 귀찮아 말고, 투덜거리지 말고. 철없어 보이니까. 야옹.
행복 가족이라는 인간들이 밖에 나가고 없는 동안 일정 시간 거실로 들어오는 볕이 참 좋아. 이 사치를 항상 누릴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더욱 좋지. 인간들은 무엇이든 충분히 누릴 때부터 행복이 시작되는 줄 아는가 봐. 당연히 그렇지 않거든. 행복은 결핍과 충만 사이 적당한 지점에 존재하더라고. 그러니까 아빠 양반, 월세 산다고 너무 힘겨워 마. 야옹.
덩치값 인간이 다른 생물보다 우월한 근거로 지성을 내세우는 게 좀 우스워. 게다가 그 지성으로 만든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면 참. 내가 보기에 인간이 그나마 내세울 경쟁력은 덩치야. 당장 누나라는 저 꼬맹이도 나보다 훨씬 크잖아. 나보다 점프도 못하고 느리면서 덩치는 커. 엄마와 아빠 양반은 말할 것도 없고. 지구에 사는 생물 가운데 인간보다 큰 종족은 10%도 안 돼. 그러니까 아빠 양반, 더욱 공부하고 사색하고 성찰하라고. 겨우 덩치값이나 할지 걱정이니까. 야옹.
잘 맞았던 청바지가 꽉 끼인다며 끙끙거리더구나. 앉았다 일어섰다 몇번 하면서 불편해 하는 모습이 조금 안쓰러웠다. 그래도 그런 불편 속에서 장점을 찾을 수 있어야겠지. “예지, 핏이 사네.”“핏? 핏이고 자시고!” 바지를 벗어 던지더구나. 그래, 핏이고 자시고! 어쩐지 후련했단다.
언어 놀라운 일도 아니지만 고양이는 인간들이 하는 그 복잡한 언어를 대부분 알아들어. 물론 글자를 안다는 것은 아니야. 음량, 진동, 표정, 몸짓을 축적한 경험으로 아주 정확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거지. 그래, 너네 말로 빅데이터라고 하면 되겠네. 그런 점에서 엄마가 쉬라 했다고 쉬고 자빠진 아빠 양반은 글자만 알지 언어를 좀처럼 몰라. 하기야 내가 아빠 양반에게 전하는 그 수많은 표현을 ‘냥냥냥’으로만 알아듣는 센스로 뭘 하겠어. 야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