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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민일보]주권자에게 바치는 헌사

대중을 과신하기도 하고 무시하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미약한 근거로 갖다붙인 분석이었고 평가였으며 오만이었다. 광장에 선 시민을 보면서 거듭 다짐했다. 대중은 내가 평가할 대상이 아니다. 다시는 그런 건방을 떨지 않을 것이다.


<경남도민일보> 신년호를 제작하기 전 임용일 편집국장이 불렀다. 촛불 든 손을 이미지로 쓸 테니 신년기획 소개를 겸한 글을 4~5매 정도로 맞추자고 했다. 2017년 1월 2일 자 <경남도민일보>는 이렇게 나왔다.



2017년 1월 2일 <경남도민일보> 1면.


신년기획 '우리가 주인이다'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다고 생각했는지 편집국장이 원문 앞 뒤에 몇 문장을 덧붙였다. '주권자여 부조리에 맞서자'는 제목은 아주 마음에 든다. 결국, 그 말을 하고 싶었다. 원문은 아래와 같다. 광장에 선 시민에게 바치는 헌사다. 많이 부족하고 부끄럽지만, 넉넉한 마음으로 받아주길 바란다.



우리가 주인입니다.



광장에 섰습니다. 촛불을 켰습니다. 세상 부조리를 향해 힘껏 외쳐봅니다. 앞으로 네가 딛고 버틸 구석은 없을 것이다. 한동안 짓눌리고 또 눌렸던 외침입니다. 버거운 일상에 떠밀리고 이유 모를 두려움에 떨었던 자존심입니다.


무던히도 참고 참았습니다. 억울하고 서러워도 맞서지 못했습니다. 스스로 못났다고 자책했습니다. 그렇게 만든 환경을 탓했습니다. 거대한 힘 앞에 주눅이 들곤 했습니다. 감히 덤벼들다 짓밟히는 몸부림을 비웃기도 했습니다. 부딪치지 않고 살아남는 게 요령이고 터득해야 할 지혜라고 여겼습니다. 흔한 부조리와 마주치면서 먼저 눈감을 때도 있었습니다. 기세등등한 권력이 눈을 부라리면 어느새 고개 숙였습니다. 부당한 착취를 견디고 가까스로 얻은 얄팍한 대가를 다행으로 여겼습니다.


그저 선량한 시민이었습니다. 먹고살 걱정만 덜면 잘 참는 시민이었습니다. 성숙한 시민은 분노하지도 않았습니다. 법 무서운 줄 아는 올바른 시민이기도 했습니다. 공동체 미덕을 잘 아는 시민은 불만을 숨길 줄도 알았습니다. 그렇게 제 한 몸 건사하면 잘 사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올바르고 성숙하며 선량한 시민은 이미 시민이 아니었습니다. 한 줌 권력을 움켜쥔 자들에게 시민은 존중할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서슴없이 낙인을 찍었습니다. 다스림을 받는 자, 노예 취급을 했습니다.


광장에 섭니다. 촛불을 켭니다. 혼자가 아니기에 외롭지 않고 작지 않습니다. 다시 힘껏 외쳐봅니다. 이제부터 내가 주인입니다. 저 뻔뻔한 부조리에 맞서는 우리가 주인입니다. 스스로 주인인 우리가 민주시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