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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2017년 11살

개과천선

to 11살 이예지 양



"아빠는 왜 차에서 욕을 해?"


움찔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옆에서 엄마가 '드디어 올 게 왔구나' 하는 표정으로 웃더라. 일단 최근 몇차례 욕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사례를 CSI처럼 검증하며 스스로 변호할 수밖에 없었다. 가족이 다칠 수도 있는 상황에서는 물불 가리지 않고 욕이 나온다는 논리였지. 너는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알겠고, 그래도 욕은 안 했으면 좋겠어."


그래, 그러자꾸나. 아빠는 이거 하나는 잘 안다. 당장 정권이 바뀌더라도 세상이 바뀌지는 않는다는 거. 자신을 스스로 아주 쬐끔 바꾼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데 세상 바뀌는 게 그렇게 쉬울 리 없잖아. 그래도 오늘 봤니? 고속도로에서 깜박이도 넣지 않고 밀고 들어오는 차를 향해 아빠가 이렇게 말했잖아.


"깜.짝.이.야. 저분 운전이 참 난폭하구나~"


너는 엄마와 함께 아주 꺽꺽거리며 웃더구나. 그게 그렇게 웃겼니? 너무 웃기지만 그래도 괜찮고 좋다는 말에 뿌듯했다. 이 나이 먹고 조금씩이라도 변한다는 게, 더 나아진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너도 언젠가는 인정해야 할 것이야. 



from 자애롭고 꼼꼼한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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