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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이 좋아

[신짱]시즌2-(6)익숙함과 결별

※ '신짱'은 '신문 짱'이 아닙니다. '신문 읽는 언론노조 경남도민일보지부장 짱'을 줄인 말입니다. 오해 없기를 바랍니다.


@영화 <모던타임즈>


매체 환경이 변하고 소비자가 변했습니다. 당연히 생산자와 매체가 그 변화를 따라가야 합니다. 그런 시도가 없던 것은 아니나 신문은 체질적으로 보수적인 매체입니다. 100년 전 신문이나 오늘 신문이나 기본 구조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어떻게든 변화해야 한다면 그 시도를 가로막는 벽은 뭘까 생각했습니다. 일단 특정 부서가 특정 지면을 책임지는 구조를 지목합니다. <경남도민일보>는 20면을 제작합니다. 편집국장을 비롯해 자치행정부, 시민사회부, 문화체육부, 경제부, 논설여론부가 각자 맡은 면이 있어 기사를 출고하면 편집부가 지면을 제작합니다.


출고, 편집, 출고, 편집, 출고, 편집... @영화 <모던타임즈>


이런 구조가 만들어진 이유는 있습니다. 매일 일정한 결과물을 어떻게든 내야 하는 신문은 무엇보다 '안정성'을 추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 면을 채워야 하는 기사가 세 꼭지라면 오늘 들어온 기사가 두 꼭지라고 해서 한 꼭지를 비워서 인쇄할 수도 없고, 기사가 네 꼭지라고 모두 넣을 수도 없는 게 신문입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크루스테스 침대 같다고 보면 됩니다. 몸이 침대보다 길면 자르고 짧으면 늘리는 것 말입니다.


지면을 나눠 부서에 할당하는 것은 생산하는 처지에서 가장 안정적인 구조입니다. 문제는 소비자가 침대를 거들떠 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누운 사람이 작으면 작은 대로, 크면 큰 대로 그 자체가 의미 있으면 보든 말든 할 뿐입니다. 생산자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침대 사이즈 따위는 관심조차 없습니다. 하지만, 신문은 이 구조를 포기하기 어렵습니다. 매일 일정한 결과물을 내야 하는 처지에서 가장 익숙하고 안정적인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변화는 당연히 여기서 시작해야 합니다


익숙한 것과 결별!


먹여 주는 대로 먹을 리가 없잖아. @영화 <모던타임즈>


신문을 펼치면 상단에 지면 이름이 있습니다. 신문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정치 △사회 △문화 △스포츠 같은 것입니다. 뉴스를 체계적으로 나눈 듯한 이 분류는 해당 부서가 이 지면을 무조건 채우라는 지시 같은 것이기도 합니다.


단지 지면을 채우고자 생산자조차 설레지 않는 콘텐츠를 끼워넣어야 한다면, 콘텐츠 가치를 축소하거나 과장해야 한다면 그 결과물은 뻔합니다. 생산자가 설레지 않는 콘텐츠를 어떻게 소비자에게 권할 수 있습니까? 협박이나 사기, 공갈과 다를 바 없습니다.


소비자에게는 아무 의미 없고 생산자는 의심조차 하지 않는 이 구조부터 깨야 콘텐츠가 변할 수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시작하지 않으면 신문을 향한 수많은 훈계(?)는 별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다음 질문은 이렇게 이어져야 마땅합니다.


이렇게 하지 말자는 얘기만 있지 어떻게 하자는 얘기는 없네?


네, 가장 익숙한 구조와 결별한 신문이 어떤 생산 구조를 갖출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다음 이야기입니다. 당연히 정답일 리 없습니다. 대신 정답을 찾는 과정에서 오답으로써 역할을 할 수 있다면 만족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