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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혼돈의 시대 수호전을 다시 읽다

저자부터 보자. 구주모 경남도민일보 사장이다. 공교롭게도(?) 내가 다니는 회사다. 그러니까 저자는 '우리 회사' 사장이다. 내용이 도무지 객관적일 수 없겠구나 생각해도 어쩔 수 없다. 적당히(?) 고려하고 읽으면 되겠다. 대신 독후감에 어떠한 강제도 깃들지 않았다는 사실 역시 믿자.



<혼돈의 시대 수호전을 다시 읽다> @피플파워


<수호전>이다. <수호지> 아니었나? <삼국지>, <금병매>, <서유기>와 더불어 중국 사대기서다. 그러고 보니 <금병매>를 읽지 않았다. 시대 제한만 없다면 <금병매>를 빼고 <영웅문>(김용) 연작을 넣는 게 내 기준에는 맞다. 중국 문학에 대한 소양이 참 천박하다. 인정한다.


<삼국지>, <서유기>와 견주면 <수호전>이 지닌 매력은 덜했다. <삼국지>보다 서사나 깊이가 부족한 듯했고, <서유기>보다는 상상력이 딸렸다. 꼴에 사내라고 액션에 예민할 수밖에 없는데, <수호전>이 묘사하는 등장인물 액션이라는 게 전반적으로 투박했다.


저마다 이름을 붙인 병장기를 든 용맹한 장수들이 말 위에서 합을 겨루는 <삼국지> 액션에는 격(格)이 있지 않은가. 육·해·공을 휘저으며 온갖 술법이 난무하는 <서유기>는 또 얼마나 화려한가. 그나마 영화 <수호전지영웅본색>(1993년)이 아니었다면 <수호전> 액션은 그저 투박하게 박제됐을 것이다.



수호전지영웅본색 @다음영화


노지심(서금강 분)과 임충(양가휘 분)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수호전> 외전에 해당하는 영화다(참! 왕조현 누나 나오신다). 작품에서 임충과 노지심은 꽤 멋있는 합을 보였다.


본론으로 들어가자. 책은 <수호전>이라는 고전에 해석과 감상을 얹은 에세이 형식이다. 전문용어(?)로 '묻어간다' 되겠다. 하지만, 이런 글이 마음먹고 제대로 쓰기가 만만찮다.


일단 원전(原典)에 대한 깊은 이해가 바탕이 돼야 한다. 이런 글은 원전에 매력을 느낀 독자가 더 찾기 마련인데, 인용부터 허술하면 딱 욕먹기 좋다. 고전에 달라붙을 수밖에 없는 무수한 해설서도 꿰야 한다. 제딴에는 거창한 해석이라고 붙였는데 누군가 이미 번듯한 문장으로 정리했다면 애써 짧은 견문만 자랑한 셈이다. 새로운 시각도 제시해야 한다. 좋은 말을 타면서 스스로 내세울 승마 기술조차 없다면 괜히 말까지 욕먹는다.



말(馬)만 좋다고 되는 게 아니다.


<혼돈의 시대 수호전을 다시 읽다>는 널린 함정을 피해 고전을 바탕으로 한 에세이가 갖춰야 할 미덕을 성취했을까. 읽는 내내 그 점을 눈여겨봤다. 성취했다고 하면 아부가 될 것이고, 미흡했다면 하극상(?)일 수밖에 없는 사원 처지에서 평가는 다른 독자에게 미룬다. 이해하시라.


권귀(權貴·벼슬이 높고 권세가 강한 사람)가 토지를 겸병하고 백성을 수탈하던 참담한 역사를 정면으로 치받은 내용이자 불의를 응징하는 칼부림이 난무하는 서사시.


저자가 정리한 '수호 이야기'이다. '권귀'는 <수호전> 배경인 송대(宋代), 작품을 완성한 명대(明代)는 물론 2016년 '박근혜-최순실' 시대까지 이어진다. 책 제목으로 쓴 '혼돈의 시대'는 개념이 아니라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묘사다.



국민 노릇하기 참 힘든 때다. @경남도민일보



이 책에서 새삼 느낀 <수호전>에 담긴 매력은 '단순함(simple)'이다. 술과 고기는 그저 많으면 된다. 사람 사이 의리만 있으면 그만이지 다른 것 따질 게 뭐 있는가. 나쁜 놈은 응징해야지 절차? 과정? 법? 그런 거 없다. 어디 한 곳이라도 부러뜨리거나 명줄도 가차없이 끊어버린다. 은혜를 입었으면 은혜로 갚고, 원한은 원한으로 갚는다. 돈으로 안 되는 일이 어딨느냐고 집요하게 캐묻는다.


뜯어볼수록 위험하기 짝이 없는 도발이 연속으로 이어진다. 선악(善惡)보다 앞서는 의리라니. 저 가차없는 무력이 부당한 권귀(權貴)가 아니라 약한 자를 향한다면? 수호전에서는 그런 일도 허다하다. 말이 좋아 '양산박 호걸'이지 비틀어 보면 그런 조폭 양아치도 없다.



담화가 아니라 보다가 담이 온다 해서 '담와'란다. @청와대


원칙과 상식이 통하고 정의가 강물처럼 넘치는 시대라면 외면받아 마땅한 이야기다. 그럼에도 2016년 대한민국에서 이 서사가 새삼 매력적인 이유는 한 가지 있다.


나쁜 것을 나쁘다 하지 못한다. 마땅히 벌해야 할 것을 벌하지 못한다. 대가를 치러야 할 것들이 오히려 벌을 주겠다고 나선다. 끊임없이 이문을 챙겼던 것들이 이제 와서 피해자라며 질질 짜고 앉아 있다. 서러운 민중은 화를 풀 길이 없어 거리에 주저앉았는데 이 나라 권귀(權貴)들은 절차를 따지고 그 와중에 또 이득을 따진다. 그렇게 셈하는 게 법이라고 한다.


흑선풍 이규가 도끼로 내려찍고 타호 무송이 주먹을 휘두르면 딱 좋겠다. 노지심이 저 능글맞은 권귀(權貴)들 멱살을 쥐고 담장 밖으로 집어던지면 얼마나 후련하겠는가. 수호전 호걸들은 되먹지 못한 것들을 벌하는 데 있어 망설임이 없다. '주둥이만 살아 움직이다 위기 앞에서 혼비백산하는 서생'(145쪽)보다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혼돈의 시대 수호전을 다시 읽다> @피플파워



여기까지가 다시 읽는 <수호전> 서사가 주는 카타르시스다. 하지만, 저자는 유쾌·상쾌·통쾌한 고전 읽기에 가끔 불편하게 개입한다. 너무 단순해서 무모하기까지 한 사고, 단호한 일처리 방식도 좋다. 그러나 세상살이가 그렇게 호락호락한 것인지 거듭 되묻는다.


의리로 뭉친 비상한 무력도 다시 생각한다. 양산박 호걸에게 가장 중요했던 의리가 과연 떠받들어야만 할 가치인가. 최순실·박근혜 의리도 의리고, 청와대와 새누리당 의리도 의리고, 조직폭력배 의리도 의리다.


덕으로 모든 호걸을 품은 주인공 송강에 대한 입체적 분석, 재앙을 부르는 존재로만 그려지는 여성에 대한 재해석 등은 고전을 비틀어 보는 전형이다. 이런 책이 지닌 미덕으로 볼 수 있다. 몰랐던 것을 알았을 때보다 당연히 안다고 생각했던 게 뒤집힐 때 얻는 즐거움이다.


그나저나 어렸을 때 본 <수호전>에서 이규는 참 보기 불편했다. 뭐 저렇게 생겨먹은 놈이 우리 편(?)인가 했다. 전형적인 나쁜 놈 아닌가. 하지만, 나이 마흔이 되니 다른 면도 보인다. 며칠 전 회사에서 만난 저자이자 사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요즘 같은 때 절차고 나발이고 흑선풍이 한바탕 쓸어버리면 주말마다 집회도 안 하고 좀 편할 텐데 말이지요.


사장은 장난스럽게 웃었다. '혼돈의 시대'를 겪는 많은 분께 이 책이 위로가 되길 바란다. 지금 권귀(權貴)에 맞서는 우리는 양산박 108두령보다 훨씬 멋있다. 진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