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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양이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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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스 어떤 인간은 고결한 고양이가 좁은 박스에서 뒹구는 게 우스운가봐. 더 우스운 것은 인간이 쓸데없이 넓은 상자에서 사는 것인데. 아빠 양반이 그러더군. 한 평은 어른 인간 한 명이 누워서 팔다리 휘저어도 되는 넓이라며? 그런 점에서 박스는 고양이에게 한 평이야. 그 한 평에 담긴 소중함과 가치를 우리는 잘 알지. 30~40명이 누워도 되는 박스에 살면서도 만족할 줄 모르는 인간들이 그런 것 좀 알았으면 좋겠어. 큰 기대는 않는다만. 야옹.
두 발보다 네 발 나는 가끔 아빠 양반이 네 발로 버티고 꼼지락거릴 때가 좋아. 팔굽혀펴기라던가? 덩치 차이는 크지만 눈높이는 대충 맞거든. 모든 소통은 눈높이를 맞추면서 시작한다는 거 정도는 인간들도 알지? 어쨌든 비효율적이며 한심하기 짝이 없는 두 발 걷기보다 훨씬 탁월하며 우아한 네 발 걷기 장점도 알았으면 좋겠어. 그러면 인간도 품위 좀 있어 보이려나. 야옹.
묘복(猫福) 아빠라는 양반이 아침에 일어나면 화장실로 향한다는 것쯤은 이미 알아. 간단한 스킨십으로 생명끼리 교감하며 하루를 시작했으면 하는 나는 화장실 문 앞에서 보통 이런 자세로 엎드리곤 하지. 아빠 양반, 한 번 쓰다듬고 지나가라고. 그런데 저 인간이 뭐라는 줄 알아? 비키라는 거야. 발 닦는 매트인 줄 알았다고. 그러면서 발로 쑥 미네. 내가 성숙하지 않은 고양이었다면 당장 깨물었겠지. 아빠 양반은 묘복(猫福)이 있어. 야옹.
급식 사람이 참 한심하다는 것은 무상급식 논란만 봐도 쉽게 알 수 있어. 우리 고양이 세계에서 급식은 간단해. 집안에서 가둬 키우면 무상급식이고, 집밖에서 자기 마음대로 살면 스스로 해결해야 해. 애초에 '유상급식' 자체가 존재하지 않지. 학교 안에서 가둬 키우면 무상급식, 학교 안 다니면 알아서 해결하는 거야. 가둬놓고 밥값 받는다고? 이게 말이 돼? 저 몰상식한 아빠도 그 정도는 알아. 나에게 밥을 주면서 밥값을 일부라도 받는 무식한 짓은 안 한다고. 그나저나 아빠 양반,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든다는데 지금 뭐하는 거야? 야옹.
밤은 얼마나 훌륭한가. 나는 한밤 중에 별을 보며 생명과 우주가 교감하는 그 고요를 즐겨. 사고는 한없이 뻗어나가고 깊어지지. 그런데 저 인간이라는 것들은 그 소중한 시간에 잠을 퍼 자. 가끔 나만 알 수밖에 없는 그 즐거움을 기꺼이 나누고자 방문을 두드리면 아빠 양반은 오히려 자라고 역정이야. 미쳤나 봐. 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어. 더 어이 없는 것은 잠들기 더할나위 없이 좋은 햇살이 들어올 때부터 이것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는 거지. 정작 잠들어야 할 시간에 말이야. 무슨 생체리듬이 그 따위인지 모르겠어. 인간이 아무리 기를 써도 고양이만큼 성숙할 수 없는 이유라고 생각해. 자야 할 시간에 움직이고 사색할 시간에는 퍼 자고 있으니. 야옹.
교양 아빠 양반이 오늘 아침 유난스럽게 클래식 음악을 튼다. 물론 클래식은 고결한 내 성품에 딱 맞는 취향이야. 그런데 고양이가 지닌 고결한 품성 따위는 개 취급(이거 진짜 최악이다)하는 아빠가 내 취향에 맞추다니. 의자에 앉아서 생각하는 꼴을 보니 뭔가 고민이 있어 보여. 그렇다고 아빠 양반이 국내 미디어 환경에서 지역신문이 나가야 할 길이라거나, 북미 긴장(같은) 상황에서 대한민국이 취해야 할 스탠스, 탈원전 에너지 운동이 가야 할 방향 등을 고민할 리 없잖아. 딱 보니 아침 설거지가 많다고 궁시렁거리네. 그러면 그렇지 참 한심해. 교양을 기초부러 가르칠 수도 없고. 야옹.
감수성 나도 인간이면 피아노 친다. 발가락이 이 모양이니 연주는 할 수 없고 그저 피아노 위에 기대는 것으로 음악적 감수성을 달랠 뿐인데, 저 아빠 양반은 보자 마자 내려오란다. 털 치우기 귀찮다고. 아주 교양머리가 근본부터 되먹지 않았어. 야옹.
의문 아빠 양반은 내가 의자에서 좀 쉬면 물뿌리개를 뿌려. 내가 물벼락 맞는 건 못 견디거든. 도무지 고양이를 섬기는 자세가 안 돼 있어. 근본부터 글러먹었지. 반면 우리 엄마는 내가 의자에서 쉬면 이렇게 쿠션을 받쳐 줘. 어떻게 저 아빠라는 수컷이 엄마같은 분을 만났는지 모르겠어. 야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