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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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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시험 "엄마, 수학 시험을 쳤는데 두 개는 틀린 것 같고 세 개는 세모야." 며칠 뒤 결과를 확인하니 다섯 개 틀렸다더구나. 세모는 무슨, 다 틀린 거지 뭐. 90점 넘게 받을 수 있었다며 엄청 아까워 했다고 들었다. 네 엄마는 그냥 틀렸다고 하면 될 것을 세모라 했다고 피식 웃더라. 이상한 자존심이 있다며. 아빠는 어쩐지 네 마음이 이해가 됐어. "예지, 수학 80점 넘게 받았다며? 확실히 아는 건데 틀렸지?""아! 진짜 아까웠어. 백퍼 아는 문제인데. 그런데 아는 거 틀렸는지 어떻게 알았어?" 이 바닥이 다 그렇단다.
선행학습 같은 반 친구 엄마가 자기 아이는 중학교 과정까지 선행학습을 했는데, 고등학교까지 선행학습을 하는 친구도 있어 좌절감을 느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단다. 좌절감이라. "예지, 선행학습 하는 거 있어?""선행학습?""지금 4학년 2학기니까 5학년 과정을 배운다던가.""아! 수학 5학년 1학기 시작했어." 좌절감보다 더한 게 뭐가 있나? 엄마에게 그렇게 말했단다. "선행학습 시키는 부모들 결정도 존중해. 선행학습을 시키는 이유도 있고 안 시키는 이유도 있겠지. 그냥 교육은 늘 어려운 것 같아. 답이 정해진 것도 없고. 잘 관찰하고 고민하고 거들고 반성하고 후회하면서 아이와 어른이 같이 자라는 거지."
욕설? "아빠, 우리 반 남자 애들 욕은 아닌데 욕 같은 그런 거 막 한다." 고작 예를 드는 게 2018년이더구나. 꼬마 수컷들이 무척 귀여웠단다. "아빠 그런 거 많이 알아. 전문이야. 예지 친구들 모아서 가르쳐주고 싶네.""진짜?" 이런 식빵, 신발끈, 시베리아 오오츠크, 조카 십팔색깔 크레파스, 써클렌즈, 가족같은… 어땠니? 엄청 큭큭거리더구나. 늘 그렇듯 아빠가 자랑스러웠으면 좋겠다.
배움 유튜브를 스승 삼아 아이패드로 뚝딱뚝딱 그림 그리는 솜씨가 제법이구나. 아주 마음에 들었다. 그림 그릴 때 즐겁다는 네 말에 더 감동했다. "아빠 뭐 해?""공부해.""기타 칠 줄 알잖아.""근본 없이 막 배웠거든." 아빠도 기본부터 배워볼까 싶어 동영상을 찾아봤단다. 어느새 부모에게 자극을 주는 아이로 자랐구나. 기특하다.
가방 "여보, 요즘 애들 들고다닌 거 있잖아. 젤리 같은 거.""이거? 액체괴물." 엄마가 대답하기 전에 먼저 가방에서 꺼내더구나. "어, 혹시 손에서 막 돌리는 그런 것도 있어?""아, 스피너." 또 가방에서 꺼내더구나. "가방에 없는 게 없네. 너 들고다니는 선풍기...""응, 이거? 헤헤." 도대체 그 보조가방에 없는 게 뭐냐? 그나저나 책은 어디에 담고 다니니? 참 신기하면서 궁금했단다.
자책 뭔가 켕기는 게 있었니? 뭐라 우물우물하는데 도저히 못알아 듣겠더구나. 결국, 화를 내고 말았단다. "예지, 우물우물하지 말고 평소 얘기하듯이 얘기해. 못 알아듣겠어!" 진짜 자애롭고 꼼꼼한 엄마가 아빠 마음을 조곤조곤 설명해주더구나. 그저 네가 당당하게 얘기했으면 했다. 그러고 보니 아빠도 늘 그렇지는 않더라. 스스로 탓할 일을 너에게 떠넘겼다 싶어 마음이 쓰렸다.
교육 아빠 가방에서 '국제신문 차승민은 퇴진하라'고 적힌 집회 카드를 꺼내 한참 보더구나. 반응이 궁금했다. "아빠, 이 사람도 박근혜처럼 나쁜 짓 했어?" 응. 그나저나 역시 교육은 이론보다 현장인가 보다.
한숟갈 "와! 아빠는 왜 그렇게 한 숟갈이 커?" 아이스크림은 엄마가 샀잖아. TV 보는 모녀 앞에 아이스크림과 숟가락 세 개를 세팅한 사람은 아빠잖아. 너는 그냥 TV 보면서 아이스크림을 퍼먹으면 되는데 아빠 한 숟갈 크기가 약간 거슬렸나 보구나. 물론 한 번 뜰 때마다 숟가락 절반도 못 채우는 모녀와 달리 아빠 한 숟갈이 유난히 풍요로운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아빠는 네가 하찮은 아이스크림 한 숟갈 크기와 더불어 재활용 쓰레기 대부분을 아빠가 짊어지는 이유도 생각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