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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2012년 6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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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너를 안고 엘리베이터를 타니 거울이 보이더구나. 순간 상상력이 발동했단다.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말을 건 것은 상상이지만 거울이 답할 수 없는 것은 현실이지. 잠시 침묵이 흐르자 네가 나즈막히 묻더구나. "뭐래?" "아, 이예지라는데." 살짝 미소짓던 너는 이내 냉정을 찾더니 거울에게 한마디 쏘더구나. "안 들려, 크게 말하라고!"
발산 너는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아이다. 아기 때부터 좋으면서도 웃음을 참는 것을 보고 참 다루기 힘든 아이라는 것을 확신했지. 여섯 살이 되면서 나아졌지만 그 본성이 어디 가지는 않더라. 아이패드로 를 하던 네가 새 한 마리로 돼지를 한 번에 쓸어버리는 위업을 달성하더구나. 벌떡 일어선 네가 양팔을 치켜올리면서 '오예'를 거듭 외치는 모습에 더 놀랐다. 어떤 감정이든 늘 그렇게 마음껏 표현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총선(2012년) 우리가 꿈꾸는 세상이 너에게는 일상이 되기를 바란다. 네 미래를 응원한다.
뻔뻔 집이 엉망인데 바닥에 널브러진 물건 대부분은 네 것이었다. 너는 아랑곳하지 않고 새 장난감을 질질 끌고 나오더구나. 화가 나더라도 다정하게 말하라는 게 엄마 지침이다. "집이 엉망인데 어떻게 해야 집이 깨끗해질 수 있을까?"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 새 장난감을 꺼내고 싶으면 가지고 놀던 장난감은 정리해서 깨끗하게 치우고 새 장난감을 꺼내면 돼." 너무 반듯한 답에 당황했단다. 계속 새 장난감을 늘어놓는 모습이 아주 뻔뻔했으나 그렇게 밉지는 않았다.
수컷 유치원에서 같은 반 남자 친구에게 사탕을 받아왔더구나. 그 친구가 너에게 내일 자기 먹을 것도 하나 달라 했다고? 낯선 아이에게서 수컷 향기를 느꼈단다. 다음 날 아침 친구 사탕까지 챙기는 엄마 모습이 재밌었다. 너는 그렇게 금세 자라고 또 자라는가 보다.
체벌 자식은 매로 키운다는 말을 의심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너를 단 한 번도 체벌한 적은 없다. 왜 그랬을까. 언젠가 너에게 화를 냈더니 당황스러울 정도로 벌벌 떨더구나. 엄마는 감정 조절 실패라며 아빠를 원망했지.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야단을 치는 목적이 뭐지? 잘못을 고치는 것인가, 잘못을 고친 것처럼 보이는 것인가. 며칠 뒤 엄마가 아이에게 말하는 법을 안내한 책을 한 권 주더구나. 읽고 고민 많이 했단다. 그래도 잘하는지 모르겠다만.
변신 엄마 따라 미용실을 간 아기가 소녀가 돼서 왔더구다. 깜짝 놀랐단다. 아빠가 감각이 좀 무디고 그 세계에 대한 이해도가 무척 낮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는 정도는 안다.
반창고 종이에 손가락을 베인 아빠에게 성큼 다가오더구나. 피가 무섭지 않았니? 순간 당황했단다. "어쩌다 그랬어? 조심하지. 나도 어릴 적에..." 딱 엄마가 너를 어르고 달래는 그 말투더구나. '어릴 적'이라는 말에는 그냥 웃음이 터질 뻔했다. "네 어릴 적이면 언제야?""4살." 대답도, 반창고 붙이는 솜씨도 야무지구나.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