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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만 "자신감과 자만심 차이가 뭐에요?" 요즘 질문이 고급져서 참 좋다. 자신감은 자기 능력을 믿는 마음이고, 자만심은 자기 능력을 뽐내려는 마음 같은 흔한 답을 원했다면 아빠를 찾지도 않았겠지. "좋아하는 사람이 잘난 척하면 자신감, 미워하는 사람이 잘난 척하면 자만심이지 뭐.""그런가?" 정답은 네가 또 찾거라.
인정 도도한 자태 때문에 늘 오해받지만, 나도 따스한 품과 손길 그리고 애정 가득한 칭찬 한마디가 늘 그리워. 흔한 고양이처럼 눈 말똥말똥 동그랗게 뜨며 애정을 구걸해 볼까 생각한 적도 있지. 하지만, 그런 욕구를 외부에 맡기고 의지할수록 자신을 성찰하기 어렵거든. 그것을 아는 게 고양이와 인간이 다른 점이고. 아빠 양반, 뭘 좀 잘했다고 흥분할 거 없어. 잘못했다고 그렇게 기죽지도 말고. 그나저나 아침에 한 번쯤은 좀 성의 있게 쓰다듬으면 안 될까. 이 인정머리 없는 양반아! 야옹.
라이프 집 크기 줄이고 살림 좀 줄이고 덜 가지려 하고 살면서 중요한 가치에 집중하는 어쩌고저쩌고를 ‘미니멀 라이프’라 하다고? 그 얘기를 듣고 진짜 인간들 과장 하나는 끝내준다고 생각했어. 그런 게 미니멀 라이프면 대부분 동물은 ‘미크론 라이프’ 정도 되겠지. 당장 화장실만 봐도 그래. 나야 플라스틱 통에 모래만 채우면 끝이지만 인간들 화장실은 변기에, 세면대에, 샤워기에 뭐 그렇게 할 게 많은지. 그나저나 아빠 양반, 화장실은 왜 못 들어오게 하냐고! 야옹.
동경 밖을 향한 동경은 안정을 확신할 수 있는 안에서 비롯하는 것 같아. 제한된 공간에서 늘 위협받고 뭔가 경계해야 한다면 밖을 내다 볼 여유 따위는 없겠지. 그런 점에서 자신이 누리는 일상에 담긴 가치를 무시하거나 외면하는 인간에게 고양이 같은 고결함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그러니까 아빠 양반, 어서 사료 그릇 좀 채우라고! 야옹.
오해 아침부터 엄마가 쓰다듬고 안아 주고 털도 빗겨 주니 참 좋더군. 엄마는 확실히 누나 꼬맹이나 아빠 양반과 달리 따스함이 느껴져. 엄마라는 존재가 그렇나 봐. 그런데 엄마 사랑을 독차지하겠다고 거슬리는 누나 꼬맹이를 살짝 깨문 게 실수였어. 엄청 야단치는데 완전 딴 사람 같더라니까. 무서워 죽는 줄 알았어. 사랑은 독차지하는 게 아니야. 또 사랑 좀 받는다고 그 사람이 귀하게 여기는 무언가를 건드리거나 가볍게 여겨서도 안 되지. 그거 헷갈리면 추하고 위험해져. 아빠 양반도 명심하라고. 야옹.
미지(未知) 하루 중 가족과 부대끼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자는 시간을 빼면 기껏 3시간 정도 될까? 하루 대부분은 외로움을 벗삼아야 하지. 전에도 얘기했지만 외로움을 즐길 줄 안다고 한없이 좋아하는 것은 아니야. 그러니까 잠깐 마주칠 때 내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다소 민망한 모습으로 뒹굴거리며 애교를 부리는 이면에는 이런 적적함이 깔려 있어. 아빠 양반 감수성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영역이지? 세상은 보이는 영역보다 보이지 않는 영역이 훨씬 방대해. 아빠 양반이 보이지 않는 세계를 앞으로도 이해할 리는 없고, 그런 영역이 있다는 것만 인식해도 훨씬 성숙해질 수 있을 거야. 큰 기대는 하지 않지만. 야옹.
성차별 "안 추워?" 밤에 티셔츠 한 장 달랑 입고 슬리퍼를 질질 끌고 나온 아빠가 없어 보였니? 아빠는 그렇게 추위를 타지 않는 편이란다. 쌀쌀한 기운을 약간 즐기기도 하고. “강한 남자라서 괜찮아.”“그거 성차별적 발언이야.”“왜?”“남자니까 어떻고 여자니까 어떻고 하는 것은 성차별적 발언이야.” 네 지적이 더 오싹했단다.
자존 언젠가 아빠 양반이 자기 어깨 높이까지 내가 도약하자 깜짝 놀라더군. 진심으로 감탄하는 모습을 보고 좀 뿌듯했지. 이처럼 고양이는 스스로 갈고 닦은 재능으로 인정받아. 자기 증명을 위해 자신을 과장하거나 다른 동물을 깎아내리지 않지. 자기 나무 자랑하고 싶어서 주변 나무를 잘라내는 존재는 내가 알기로는 인간 뿐이야. 그냥 자기 나무를 더 성의 있게 키우면 되잖아. 아빠 양반, 뭔 말인지 알겠어? 야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