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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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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 물론 거실에 널브러진 인형을 아빠가 치워도 된다. 하지만, 네가 잘 노는 것만큼 잘 정리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했지. "예지야, 인형 치우자.""알겠습니다~람쥐." 회사 후배들이 할 때는 가소로웠는데 아주 재밌는 개그였구나. 후배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해야겠다.
편애 식당에서 엄마는 너와 함께 먹겠다며 된장찌개를 시켰다. 아빠는 비빔냉면과 우리가 함께 먹을 만두 한 접시를 시켰다. 엄마는 끈적한 눈길을 한참 냉면에 보내더니 결국 한 젓가락 가져가더구나. 그래도 아쉬워 보여 아빠는 한 젓가락을 더 권했다. 접시를 내밀며 흐뭇해 하는 엄마 표정 봤니? "아빠는 엄마만 사랑해?" 아빠 입으로 들어가던 냉면을 어색하지 않게 네 밥그릇 위에 올린 것은 순발력이었다. 이 자리에서 두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었지. 엄마와 너는 하나 시켜서 나눠먹을 시기가 지났다는 것, 네가 사랑은 물질로 증명한다는 것을 알아챘다는 것.
후유증 유치원 운동회, 바로 이어진 어린이날 주요 행사 등 대선 후보급 일정을 소화한 너는 결국 구토와 고열에 시달리며 응급실로 향했다. 밤새 너에게 시달리던 엄마도 마침내 침대에서 뻗더구나. 열이 내리지 않은 너는 그래도 거실에서 늘어져 를 시청하는 집념을 보여줬다. 아빠는 너와 엄마를 병원에 모시고 다시 출근하는 비서관 일정을 차질없이 진행했지. 아플 때마다 느끼겠지만 건강이 최고다.
택배 갑자기 앞집에서 웅성거리는 소리에 호기심이 발동했나 보구나. 무슨 소리냐고 묻는 말에 할 말이 없었다. 아빠라고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잖아. "글쎄, 손님이 왔나?" "손님? 택배?" 어쩌다가 손님이 곧 택배가 됐는지는 엄마가 잘 알겠지. 며칠 전 홈쇼핑 채널에 집중하며 눈을 떼지 못하는 모습이 뭔가 마뜩찮기는 했다.
거울 너를 안고 엘리베이터를 타니 거울이 보이더구나. 순간 상상력이 발동했단다.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말을 건 것은 상상이지만 거울이 답할 수 없는 것은 현실이지. 잠시 침묵이 흐르자 네가 나즈막히 묻더구나. "뭐래?" "아, 이예지라는데." 살짝 미소짓던 너는 이내 냉정을 찾더니 거울에게 한마디 쏘더구나. "안 들려, 크게 말하라고!"
발산 너는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아이다. 아기 때부터 좋으면서도 웃음을 참는 것을 보고 참 다루기 힘든 아이라는 것을 확신했지. 여섯 살이 되면서 나아졌지만 그 본성이 어디 가지는 않더라. 아이패드로 를 하던 네가 새 한 마리로 돼지를 한 번에 쓸어버리는 위업을 달성하더구나. 벌떡 일어선 네가 양팔을 치켜올리면서 '오예'를 거듭 외치는 모습에 더 놀랐다. 어떤 감정이든 늘 그렇게 마음껏 표현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총선(2012년) 우리가 꿈꾸는 세상이 너에게는 일상이 되기를 바란다. 네 미래를 응원한다.
뻔뻔 집이 엉망인데 바닥에 널브러진 물건 대부분은 네 것이었다. 너는 아랑곳하지 않고 새 장난감을 질질 끌고 나오더구나. 화가 나더라도 다정하게 말하라는 게 엄마 지침이다. "집이 엉망인데 어떻게 해야 집이 깨끗해질 수 있을까?"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 새 장난감을 꺼내고 싶으면 가지고 놀던 장난감은 정리해서 깨끗하게 치우고 새 장난감을 꺼내면 돼." 너무 반듯한 답에 당황했단다. 계속 새 장난감을 늘어놓는 모습이 아주 뻔뻔했으나 그렇게 밉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