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편지/2015년 9살

(94)
전학 전학한 학교는 어떻니? 친구들은 잘해 주니? 늘 말하지만 하루하루가 그저 재밌으면 좋겠다. 며칠 전 전학 수속을 마치고 학교를 나오면서 꾹 참았던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니 짠하더라. 아빠도 초등학교 3학년 때 전학하면서 엉엉 울었거든. 그런데 전학하고 첫날 학교에서 재밌었다고 깔깔거리는 모습을 보니 참.
보물? 네 전화 벨소리가 한참 울려서 들여다 봤더니 너는 낮잠을 자고 전화기 혼자 울더구나. 전화기를 보니 '나의 보물 엄마'라고 뜨네. 엄마와 네 전화기로 통화를 하고 나서 갑자기 아빠는 어떻게 저장됐는지 궁금했어. 신화 시대부터 호기심으로 망한 인간이 한둘이 아닌데. 너에게 전화를 걸었지. '나의 보물 아빠'. 잠깐 조마조마했단다.
침대 개인 침대가 있으면 혼자 잘 수 있겠다고? 아직도 눈 떴을 때 엄마가 안 보이면 징징거리는 네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잘 때 엄마가 옆에 같이 누우면 되지." 그래, 그런 방법이 있지. 그러면 아빠는 침대 사준 보람을 어디서 찾아야 할까?
나는? 이사 간 집 어때? 괜찮니? 10년 남짓 정리하지 않은 물건들을 한번에 처리하느라 식겁했다. 못 사는 나라에 가면 마트를 차려도 될 만큼 뭐가 나오더구나. 아빠가 조금 과장해서 아내 빼고 다 버린다는 각오로 물건을 정리했다고 했다. "나는?" 늘 그렇듯 날카롭더구나. 너에게 큰 실수를 했네.
피구 학교에서 피구를 했다면서. 그래, 날아오는 공을 가까스로 피했는데 공에 맞았다며 아웃을 선언하는 친구에게 안 맞았다고 설명하는 중에 다른 친구가 던진 공에 맞았다 그거지? "공이 아프지는 않았는데 억울했어." 아빠 어렸을 때부터 '오징어 달구지 금 밟는 문제', '축구할 때 핸드링' 문제와 더불어 피구 공 맞는 문제는 늘 난제였단다. 오늘도 욕봤다.
사롸있네 "아빠, 금이 좋아, 은이 좋아, 구리가 좋아?" "아빠야 예지가 좋지." 쑥스러운 듯하면서도 흐뭇하게 반짝이는 네 표정을 보고 아빠는 한숨 돌리며 생각했단다. 사롸있네! 사롸있어!
2층버스 2층 버스가 지나가길래 너에게 알려줬지. "와, 타고 싶어!" 이 말을 반복하는 네 마음을 당연히 이해했지만, 지붕 없는 버스 2층에서 뻔히 아는 동네를 구경한다는 게 내키지는 않았다. "공기도 별로 안 좋고 재미도 없겠다." "아빠, 무섭지?" 오호! 남자 자존심 건드는 기술은 언제 배웠냐?
이해2 "아빠, ○○이는 아빠가 출근할 때 술 마시지 마라고 해. 그런데 꼭 마셔야 한다면 한 잔만 마시라고 한다던데, 그래도 ○○이 아빠는 술 많이 마시고 들어온다는 거야." 느닷없이 친구 얘기를 꺼내며 아빠를 말똥말똥 쳐다보더구나. 그나저나 옆으로 돌려치는 기술은 어디서 배웠니? 그 상황에서 아빠라고 뭐 할 말이 있겠냐. "그래? 히~." "응, 그래. 히~" 꼭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뭔가가 있어 뿌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