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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2015년 9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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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l 옛날에는 아이들이 하도 무시받고 괴롭힘을 당해 1년에 하루 만이라도 잘해 주자고 '어린이 날'을 만들었다.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요즘 아이들은 1년 내내 상전도 그런 상전이 없잖아. 그래서 아빠는 '어린이 날' 따위가 왜 필요한 지 모르겠다 했고. "에이~ 아빠, 나도 어버이날 선물 준비할게" 하이파이브를 할 수밖에 없었단다.
운동회 요즘 노는 모습을 보면 불과 몇주 전에 머리 수술을 걱정할 만큼 다쳤던 애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빠른 회복력 매우 반갑고 고맙다. 어제는 운동회 때 불렀던 응원가를 메들리로 한참 부르더구나. 솔직히 약간 질리기는 했다. 너 내년에 백군되면 어쩌려고? 혹시 완치 아닌가 싶을 때도 있는데, 너는 숙제 직전이나 먹기 싫은 음식 앞에서 가끔 통증을 호소하며 그런 오해를 풀어주더구나. 최소한 심하게 볼록한 상처 부위가 가라앉을 때까지는 너를 믿을 거야.
후유증 별 이상 없이 잘 회복하는 네가 얼마나 대견한지 모른다. 그리고 엄마와 아빠는 이미 안다. 머리를 어루만지며 언제든지 먹고 싶은 것을 먹을 수 있고, 하기 싫은 것을 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챈 네가 그 특권(?)을 쉽게 포기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먹기 싫은 밥과 반찬을 앞에 두거나 미뤄서는 안 될 숙제를 해야 할 시점에 너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그러더구나. "엄마, 머릿속이 흔들려요." 불과 3분 20초 전에 을 보면서 깔깔 뒤집어지던 아이가 말이다. 그래도 엄마와 아빠는 6개월만 봐주기로 했다. 또 모르잖아. 진짜 아픈데 엄마, 아빠가 의심하면 너는 얼마나 서럽고 얼마나 아프겠냐.
퇴원 4월 16일 CT 검사 결과를 기다리며 의사에게 들었던 각종 후유증을 애써 지우고자 했단다. 의사가 입원실로 들어오는데 표정부터 살피게 되더구나. "이제 학교 가야지. 괜찮아?""네." 비록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였지만 충분히 크고 또렷하게 들렸단다. "입원실 환경이 좋은 것도 아니고 이제 통원 치료를 하지요. 검사 결과 이상 징후는 없네요. 6개월 정도 보는데 지금 같으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고생했다. 너는 곧 일상을 되찾을 것이며 엄마는 꾹 눌러왔던 몸살 기운이 이제 뻗치겠지. 아빠는 정수리 근처에 새끼 손톱만한 원형 탈모가 생겼다더구나. 그래도 충분히 지급할 만한 대가였다. 그동안 잘 견뎠고 앞으로도 잘 해내자.
입원(8) 4월 15일 오래 자지는 않지만 깊이 자는 아빠는 그래도 새벽에 네가 끙끙거리는 소리에 예민해지더라. 앓는 소리는 통증 때문이기도 했고, 통증이 아닌 것 때문이기도 했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머리를 만져달라고 할 때는 분명 통증이었고, 아프지는 않지만 울기만 할 때면 통증은 아니었지. 그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짐작할 수밖에 없었단다. 처음에는 헬멧을 쓴 것처럼 부어서 충격 부위를 알 수 없던 머리가 이제야 촉감만으로 위치를 알 수 있게 됐더라. 봉긋 솟은 부위가 얼굴 쪽은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짠했다. 의사는 맥박과 산소 공급을 확인할 수 있는 장치만 남겨놓고 링거도 빼겠다더구나. 그러면서 잘 먹여야한다고 또 당부하더라. 환자 몸에서 떨어져나가는 게 많다는 것은 그만큼 회복하고 있다는..
입원(7) 4월 14일 그러고 보니 네가 3일 이상 입원하면서 6인실을 쓴 것은 처음이네. 1~2인실을 쓰고 싶었으나 자리가 나지 않았어. 엄마는 6인실 환경을 너무 힘들어 했단다. 아빠는 바로 누우면 짧고 모로 누우면 좁은 보조침대 때문에 발목과 어깨가 결린 것과 네 오줌 변기를 종종 비우는 것 말고는 견딜만 했다. 네 침대를 기준으로 시계 방향으로 먼저 유방암으로 입원한 할머니. 귀가 잘 안 들려서 할머니도 가족도 목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일상 대화가 싸움(?)이더구나. 그 옆에 젊은 아줌마는 아픈 아들과 함께 있는 딸에게 욕이 입에 붙었고. 할머니와 이 아줌마는 서로 시끄럽다고 투덜거렸다. 맞은편 유방암으로 입원한 아줌마는 괄괄한 성격으로 우리방 반장(?) 역할을 했고. 우리 맞은편 침대는 호흡기 질환으로 입원..
입원(6) 4월 13일 의사가 뇌압 낮추는 약 투여를 일단 멈춰보자고 하더라. '9-1-5', 그러니까 오전·오후 9시, 1시, 5시 하루 여섯 차례 투약했던 거 말이야. 다시 견딜 수 없을 만큼 통증을 호소하면 따로 대처하겠다고 했지. 투약을 멈추고 상태를 보자는 것은 당연히 좋은 신호였어. 수술 걱정과 다시 한 발짝 멀어지는 조치였거든. 약을 멈췄을 때 생길 수밖에 없는 통증을 잘 견딜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돼지국밥 국물 특수(?)는 얼마 가지 않더구나. 그 시점에 외할머니가 챙겨 보낸 미역국이 대체제 역할을 한 게 다행이었다. 그래봤자 밥 2~3술에 국물 조금 먹는 정도였지만 그게 어디냐. 초콜릿과 라면과자, 바나나우유를 식사 목록에 올린 것도 작은 성과였다.
입원(5) 4월 12일 역시 먹는 게 가장 문제였다. 병원 밥은 거의 그대로 들어왔다가 그대로 나갔지. 그 잘먹던 빵, 떠먹는 요구르트, 뿌셔뿌셔, 초콜릿, 아이스크림. 심지어 필살기(?) 라면까지도 네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더구나. 그런데, 아무 기대 없이 막 던진 돼지국밥에 반응을 보일 줄이야. 국물을 받아온 곳은 병원에서 좀 떨어진 돼지국밥집이었어. 밥을 조금 말았더니 드디어 깔짝깔짝 몇 숟가락을 뜨더구나. 겨우 몇 숟가락이었지만 참 뿌듯했다. "아빠, 저녁에 국물 또 먹을게요." 처음으로 마음 편한 웃음이 나오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