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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2017년 11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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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습 to 11살 이예지 양 "아빠가 왜 자애롭고 꼼꼼한 아빠야?" 제대로 기습에 걸리는 바람에 놀랐다. 거실 컴퓨터를 켜 페이스북에서 로그아웃 먼저 했다. 이제 슬슬 이 이야기도 마칠 때가 오는구나 싶었단다. 그러고 보니 공식적(?)으로 기록에 남은 이 이야기를 시작한 날짜가 2012년 1월 3일이네. 네가 6살 때다. 너와 함께 한 모든 날이… 됐다, 누가 벌써 해처먹었구나. from 자애롭고 꼼꼼한 아빠
이상한 나라 to 11살 이예지 양 라는 책을 읽더구나. 마침 학교에서 네 영어 이름이 '앨리스'라는 것을 알았단다. "예지 이야기 읽네.""흐흐, 맞아. 그런데 나는 이상한 나라에 안 살아서." 사실 말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책보다 더 이상한 나라였단다. 이제 이상하지 않은 나라가 되려고 엄청 애쓰는 중이지. 이상하지 않은 나라 앨리스, 아니 이예지로 살았으면 좋겠구나. from 자애롭고 꼼꼼한 아빠
구별 to 11살 이예지 양 집에서 전과목 100점을 받은 친구가 부러웠다며 펑펑 울었다고? 엄마는 늘 그렇듯 갑갑한(?) 모범답안을 내놓았더구나. 열심히 하라니 말이다. 그건 그렇고 그날 저녁 수학 숙제를 앞에 놓고 하기 싫은 티를 내는 너에게 엄마가 또 한마디 했다더라. "예지, 공부 잘하고 싶다면서. 그러면 숙제도 열심히 해야지." "아니 내가 부럽다고 했지 언제 잘하고 싶다고 했어?" 또 펑펑 울었다더구나. 맞다, 부러운 것과 잘하고 싶은 게 어찌 같을 수 있단 말이냐. 엄마 잘못이다. from 자애롭고 꼼꼼한 아빠
추천 to 11살 이예지 양 "아빠, 나 여기 이 책들 다 읽었어." 책장 한 줄을 가리키면서 자랑질을 하더구나. 장하다. 이 순간 "와 대단하네" 같은 영혼 없는 칭찬질은 평범한 아빠들이나 하는 짓이고, 비범한 아빠 대사는 이렇단다. "오! 그래? 혹시 아빠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 있어?" 잠시 고민하던 너는 라는 책을 꺼내서 내밀더라. "무슨 내용이야?""사이 좋은 부부가 함께 어려움을 이겨내는 얘기야." 많은 교훈을 얻으마 이것아! from 자애롭고 꼼꼼한 아빠
감기 to 11살 이예지 양 감기·몸살이라고? 코를 풀며 힘들어 하는 모습이 참 안쓰러웠다. 학교 수업이 어렵겠더구나. 하루 쉬어야지? 힘겨운 듯 고개만 끄덕거렸지만 표정은 한결 밝아지더라. 아빠가 그런 순간은 잘 잡아낸단다. 어쨌든 엄마·아빠는 출근하니 외할머니 댁에 가야지. 맞아, 네 파란나라. 천사 같은 외할머니가 살고 꿈과 사랑이 가득하며 숙제 따위 없는 곳. 차에서 내리는 네 한손에는 심심할 때 보겠다며 챙긴 책이 가득한 가방, 다른 한손에는 네 엄마가 반찬 얻어올 때마다 챙겼던 빈 플라스틱 통을 가득 담은 큰 봉투가 있었다. "아빠, 잘 다녀와. 사랑해." 양손에 제법 묵직한 짐을 들고 외할머니 댁으로 뛰어가는(?) 네가 참 건강해 보였다. 어서 회복하거라. from 자애롭고 꼼꼼한 아빠
스마트폰 to 11살 이예지 양 똑똑한(smart) 폰으로 게임, 동영상, 카톡, 채팅까지 차근차근 정복하는 너를 걱정하던 엄마가 드디어 결단했다. 딸을 바꿀 수 없으니 기계를 바꾸기로 했지. 당연한 결정이다. 그래도 늘 하던 것처럼 선택은 너에게 맡기기로 했다. 엄마는 그 재미진 물건 사용을 네 스스로 적절하게 조정할 수 없다는 점, 엄마나 아빠가 옆에서 도와줄 수 없다는 점 등을 얘기했다. 아빠는 재미를 찾는 게 사람에게 당연한 일이기는 하나 스마트폰이 앞으로 더 재미있는 무언가를 할 기회를 뺐는다는 점을 얘기했지. 이제 네 생각을 들을 차례였다. "게임이나 인터넷이 되지 않는 그냥 휴대전화를 쓰는 방법도 괜찮을 것 같아." 멀쩡한 아이폰을 두고 2G폰을 쓰게됐구나. 큰 결정을 한 그날 너는 자기 전에 엄마를..
결혼 to 11살 이예지 양 "아빠, 결혼하면 행복해?" 길에서 갑자기 질문하기 있니? 살짝 움찔했단다. 그나저나 그게 왜 갑자기 궁금했을까? "예지 보기에 엄마, 아빠 어때?""응. 행복해 보여.""맞아. 결혼해서 행복해." 활짝 웃는 모습이 예뻤다. 이제 네가 답할 차례다. 갑자기 그게 왜 궁금했을까? "인터넷에서 다른 거 찾다가..." 이노무 인터넷! 약속한 식당 앞에서 기다리는 엄마에게 후다닥 달려가더구나. 그런 모습 보는 것도 결혼해서 생긴 행복이다. from 자애롭고 꼼꼼한 아빠
유도심문 to 11살 이예지 양 미안하다. '유도심문'이라는 것을 해봤다. "딸들은 아빠가 멋있다고 하던데 예지도 그래?""응.""언제 멋있어?""음… 일할 때, 요리할 때, 같이 놀 때." 역습 당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다. 남자 새끼들이 그렇거든. 조건 없이 멋있었으면 했지. 그나저나 네 답변에서 엄마 향기를 느꼈다면… 아니다, 아빠가 예민했다. from 자애롭고 꼼꼼한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