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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 소싯적 누나 꼬맹이를 할퀴었을 때 아빠 양반이 집어던진 쿠션을 본능적으로 피하면서 깨달았어. 인간은 감히 고양이를 응징할 수 없다는 것을. 아빠 양반은 ‘저걸 때릴 수도 없고’라며 씩씩거렸지만,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거지. 내 세상을 만끽하며 인간 위에 군림하려는 순간 아빠 양반이 장비한 무기가 바로 물뿌리개야. 찍찍 나오는 물을 미간에 맞으면 진짜 못 견디겠더라고. 아빠 양반은 공익근무했다면서 나를 저격하는 솜씨 하나는 일품이야. 어쨌든 상대를 인정할 줄 아는 고양이 품성을 아빠 양반도 배워야 할 텐데. 야옹.
행복2 인간들이 그토록 떠벌이는 행복이라는 게 어떤 조건이 맞아떨어져야 누릴 수 있는지 잘 모르겠어. 노력하면 언젠가는 그 조건을 채울 수 있는지도 모르겠고. 행복은 개체를 둘러싼 모든 부조리가 사라지면 생기는 결과물이 아니야. 어떤 부조리와 맞서도 견뎌낼 수 있는 기초체력 같은 거지. 아빠 양반, 혹시 아시나? 아파트 위·아래층 통틀어서 아침·저녁 음식 만드는 냄새 나는 곳은 우리집뿐이야. 몰랐지? 야옹.
도전 영역 동물인 고양이에게 갈 수 없는 곳이 있다는 것은 스트레스야. 아빠 양반이 내 털로 말미암은 알레르기 때문에 천식을 앓으면서 이 집에서 침실은 드나들 수 없는 유일한 곳이 됐지. 물론 불굴의 고양이로서 부끄럽지 않은 도전은 늘 있었어. 하지만, 아빠 양반도 만만찮더군. 문고리도 바꾸고 열쇠도 채우고. 그래도 아빠 양반, 도전 의지조차 꺾는 바퀴 달린 큰 가방은 너무했어. 정당한 요구를 차벽으로 가로막던 위정자와 다른 게 뭐야? 그러면서 맨날 민주주의는 무슨. 야옹.
지식 한 종족 안에서 지식이 많은 자가 지녀야 할 미덕은 희생이야. 대부분 동물 무리 안에서 의심 없이 지켜지는 원칙이지. 희생하는 지적 존재가 무리 안에서 받는 대가는 존중이고. 그런 점에서 그저 군림하고자 철부지 때부터 머리에 지식을 쑤셔넣는 인간은 참 흥미로운 존재야. 아빠 양반, 책을 읽어서 얻고자 하는 게 뭐야? 늘 고민하라고. 야옹.
간섭 감각이 닿는 모든 것에 개입해야 한다면 고양이는 아마 미쳐버릴 거야. 고양이는 인간보다 훨씬 멀리 보고 더 작은 소리도 들어. 서랍 깊숙이 숨겨 둔 간식 냄새도 늘 맡고 촉각 또한 예민하지. 아빠 양반이 방에서 전화 통화를 하면 거실 끝에서도 상대 목소리까지 들려. 저 양반 또 술 약속 잡고 있네 으이구. 그러니까 이 모든 것에 간섭할 수도 없거니와 간섭하지 않는 게 맞기도 해. 아빠 양반, 때로는 그 어설픈 감각에 뭔가 얻어걸리고 거슬리더라도 풍경처럼 받아들여. 세상 일이 자기 범주 안에서만 돌아갈 리 없잖아? 그래서도 안 되고. 야옹.
고통 고양이는 타고난 균형감각 덕에 웬만한 높이에서 떨어져도 충격받는 일은 없어. 그렇다고 누나 꼬맹이가 미끄러져서 넘어질 때 아프지 않겠다고 생각하지도 않아. 우리 같은 운동신경이 아무 동물에게나 허락되지는 않으니까. 타자가 겪는 고통을 그대로 공감하는 게 고양이가 지닌 미덕이지. 하지만, 인간은 자기가 느끼지 못하는 고통은 별 거 아니라고 여기나 봐. 자기 힘들 때만 아주 끙끙 앓지. 아빠 양반, 제발 자기 힘든 거 오버하지 말고 남 힘든 거 얕잡아 보지 마. 미성숙하게 보이니까. 야옹.
결핍 누구에게나 결핍은 있어. 인간보다 뛰어난 신체 능력을 갖췄으면서 스스로 깊게 성찰할 줄 아는 고양이도 종종 결핍을 겪지. 타자에 대한 이해가 아주 부족한 아빠 양반은 고양이가 느끼는 결핍을 먹는 것과 스킨십 두 가지로만 분류하는데 미칠 노릇이야. 아빠 양반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섬세한 감정 교류로만 채울 수 있는 결핍인데 말이지. 이제 저 양반에게는 기대를 접어야 할 것 같아. 그런 아빠 양반이 주변 인간이 겪는 결핍을 아주 복잡하게 해석하는 꼴을 보면 꽤 우스워. 내가 보기에는 대부분 애정결핍으로 수렴하거든. 야옹.
심쿵 갑자기 품으로 달려들더니 이마로 가슴팍을 들이받더구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네가 씨익 웃으며 하는 말에 당황했다. “심쿵!” 아무리 생각해도 상황에 적확한 말이다만, 이럴 때 쓰는 말이 맞기는 맞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