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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의 재발견 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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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의 재발견]창원은요 은 지금은 한몸인 창원·마산·진해를 따로 다뤘습니다. 이 때문에 창원시청 관계자는 "늘 합치는 게 고민인 지역을 왜 굳이 찢어놓느냐"며 가벼운 원망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도 창원·마산·진해를 따로 정리한 것은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통합은 세 가지 정체성을 하나로 뭉개는 게 아니라 각자 개성이 서로 빛나면서 자연스럽게 어울려야 하는 것 아닙니까? 창원이 지닌 개성은 '계획 도시'라는 태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사람이 모여 만든 도시가 아니라, 만든 도시에 사람이 모인 셈입니다. 그렇게 만든 도시는 국가 산업을 든든하게 떠받친 주춧돌이 됐습니다. 70~80년대 국가산업을 가장 앞에서 이끈 도시는 창원입니다. 진주에서 부산으로 간 경남도청은 1981년 창원으로 옮기기로 결정됩니다. 1983..
[경남의 재발견]합천은요 합천은 경남에서 가장 넓은 땅입니다. 하지만, 그 넓은 땅이 여기 사람들 살림에는 큰 보탬이 되지 않았습니다. 합천 사람들이 일찍부터 바깥으로 눈을 돌린 것은 척박한 삶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몸부림으로 보는 게 맞을 듯합니다. 그래서 넓은 합천 땅은 사실 좁은 땅이기도 합니다. 농사지을 땅이 있나, 공단이 들어올 수 있나, 소라도 키워야지. 이름 높은 합천(삼가) 한우 배경에는 이런 아쉬움도 짙습니다. 그런데 세상 이치라는 게 그렇습니다.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고, 잃는 게 있으면 또 얻는 게 있습니다. 70% 넘는 땅이 예부터 사람들 접근을 호락호락 허락하지 않았던 산지라는 것은 이렇게 고쳐 쓸 수도 있습니다. 예사로 건들지 못했던 산이 경남에서 가장 넓게 두루 퍼진 곳. 그리고 가야산과 황매산이 ..
[경남의 재발견]거창은요 거창 이야기를 신원면 '청원묘역'과 '거창사건추모공원'에서 시작한 이유는 몇 번 얘기했으니 넘어가겠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군이 저지른 민간인 학살은 이렇게 한 줄로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국민은 군을 믿었으나, 군은 국민을 믿지 않았다. 나라가 순박한 국민을 배신한 일입니다. 거창은 그나마 정부 사과라도 받은 사례이고 아직도 정부가 외면하는 민간인 학살 피해자는 셀 수 없이 많습니다. 거창은 일찌감치 북부 경남 중심지 노릇을 했습니다. 해방 전에 검찰청, 법원, 세무서 등 주요 행정기관이 들어서면서 산청·함양·합천 등 북부경남을 아우르는 행정 중심지가 됐습니다. 북부 경남 '터줏대감'을 자처하는 이곳 사람들 자부심에는 충분한 근거가 있습니다. 게다가 땅 생김새도 그런 자부심을 거듭니다. 거창을 둘러싼 산..
[경남의 재발견]함양은요 첫 걸음을 뗀 함양은 여러모로 참 특별합니다. TV에 같은 프로그램에서 함양이 나오면 괜히 반갑기도 했습니다. 함양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선비의 고장'입니다. 조선시대 영남사림을 대표하는 두 지역을 묶어 '좌안동 우함양'이라고 했다는 말을 어찌나 많이 들었는지 모릅니다. 함양을 설명할 때 그 내용이 빠지면 큰일 난다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어쨌든 안동은 워낙 유명해서 그런가보다 했지만, 못지않은 자산이 경남 함양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은 유쾌했습니다. 사실 함양이 내세우는 '선비 문화'는 이웃 거창과 상당히 많은 점을 공유합니다. 그럼에도 '선비의 고장'이라는 수식은 함양이 독점하다시피 쓰고 있습니다. 아마 그만큼 함양군 행정이 영민했다고 보는 게 맞을 듯합니다. 함양이 또 내세우는 자랑거리는..
[경남의 재발견]산청은요 영남을 대표하는 유학자 남명 조식이 말년을 보낼 곳으로 점찍은 곳. 현대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큰어른 성철이 태어난 곳. 바로 산청입니다. 재밌는 게 성철이 입적한 곳, 조식이 태어난 곳은 또 합천입니다. 역시 지리산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경남에 지리산 자락이 걸친 지역은 여기저기 많습니다. 경남뿐 아니라 전라도 여러 지역도 지리산을 제 고장 자산이라고 내세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리산 최고봉인 천왕봉(표지석) 주소는 바로 산청군 시천면입니다. 이곳 사람들이 지리산과 연을 각별하게 내세우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산청 사람 성정을 따로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전에도 한 번 얘기했지만, 경남 대부분 지역이 제 고장 사람 기질을 무뚝뚝하고, 고집 세고, 드세고, 급하고,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이런..
[경남의 재발견]창녕은요 솔직히 창녕보다 '부곡하와이'를 먼저 알았습니다. 부곡하와이는 국민학교(저는 초등학교 아닙니다) 때, 창녕 화왕산은 대학교 때 알았습니다. 그리고 부곡하와이가 창녕에 있다는 것은 더 늦게 알았답니다. 하나 더 고백하자면, 우포늪(소벌)은 회사 들어오고 나서 알았습니다. 어쨌든 이 부끄러운 고백으로 창녕이 지닌 큰 자산 두 가지가 정리되는데, 바로 부곡 온천과 우포늪입니다. 창녕에도 물론 화왕산, 관룡산, 영취산 등 제법 그럴듯한 산이 있습니다. 그래도 창녕에 있는 산을 경남에 있는 산 가운데 최고로 꼽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지리산을 껴안은 서북부 경남이 웃을 테고, 영남 알프스가 품은 동부 경남이 또 섭섭하다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우포늪은 경남은 물론 나라 안에서도 최고로 꼽는 내륙 습지입니다. ..
[경남의 재발견]함안은요 우리나라에 물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르는 곳이 있읍니까?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함안이 바로 그 드문 곳입니다. 남쪽과 동쪽에 몰린 산에서 비롯한 물줄기는 북쪽에 있는 낙동강과 남강을 향해 흐릅니다. 그런데 이게 옛사람들 눈에는 물줄기가 왕을 향해 흐른다고 상당히 거슬렸나 봅니다. '역수의 고장'이라고 여간 홀대한 게 아니었습니다. 역모나 배신이 일어날 땅이라고 했답니다. 물이 높은 데서 낮은 곳으로 흐르지 거꾸로 흐르는 게 어디 있습니까. 게다가 역모·배신이라니. 함안은 조금만 취재해도 그런 성정과 거리가 먼 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호투쟁(好鬪爭) 밀양 정도면 모르겠습니다. '고려동'만 봐도 그렇습니다. 왕은 바뀌었어도 우리는 조선 백성으로 못 살겠다며 담을 치고 그 밖으로 ..
[경남의 재발견]의령은요 의령에서 두 번째로 높은 한우산(836m) 정상에서 오른쪽에 보이는 시가지를 가리켰습니다. 함안이라고 합니다. 다시 왼쪽에 멀리 보이는 시가지를 가리켰습니다. 창녕이라고 합니다. 나머지는 모조리 봉우리인데 의령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산에서도 의령 사람 사는 땅이 보이지 않는 셈입니다. 의령은 접근성도 그렇게 좋지 않습니다. 의령을 바로 지나가는 고속도로도 없고 철도도 없습니다. 즉, 의령을 찾으려면 경남 어디에서 한 번 더 들어가야 합니다. 어쩐지 무뚝뚝하지 않습니까? 다가서기도 어렵고, 잘 보이지도 않고… 하지만, 늘 얘기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게 아닙니다. 처음에는 딱히 그 매력을 꼬집어 말하기 어려웠던 의령에서 하루를 보내고, 한 번 더 찾고 그러니 다른 땅에서 접하기 어려운 매력이 조금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