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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2014년 8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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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짐? "엄마가 더 좋아, 내가 더 좋아?" 네가 갑자기 물었잖아. 아빠는 엄마를 먼저 좋아했고 예지를 나중에 좋아하게 됐고 지금은 둘 다 좋다고 했다. 그 질문에 이보다 더 훌륭한 답이 있을까. 엄마는 같은 질문에 서슴없이 아빠보다 예지가 좋다고 답했더구나. 그래서 아빠 답을 수정하련다. 아빠도 예지가 더 좋아.
이년? 네가 '이년'은 어떨 때 쓰냐고 물었잖아. 너무 깜짝 놀라서 다시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해년(年)은 어떻게 쓰냐고요?" 그래, 아빠가 좀 천박했다. 미안.
착한 일 아빠가 네 가방과 아빠 가방 두 개, 외할머니가 준 반찬 등을 양손에 가득 들고 차에서 내렸잖아. 순간 네가 아빠 휴대폰을 달라 해서 줬고. 집에 들어오자 너는 학교 알림장을 펴서 착한 일 적는 칸에 '아빠 짐을 들어줬어요'라고 쓰더라. 거짓말은 아니다만.
재미 함께 을 보면서 한참 웃었잖아. 네가 갑자기 퀴즈를 냈지. "아빠, 이 왜 재미 있는지 알아?" "아니, 모르겠는데." "유머가 있기 때문이지." 그러니까 그 유머가 뭐냐고. 궁금했지만 잘난 척하는 네 표정을 보니 차마 묻지 못하겠더라. 뭐 그렇게 중요한 문제도 아니다.
자격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네 잘못 때문에 처음 버럭했을 때 펑펑 울면서 무서워 떠는 모습을 보고 이건 정말 아니라고 생각했다. 네가 잘못하지 않기를 원했지 아빠를 무서워하기를 원하지는 않았거든. 다음 날 엄마는 아이와 대화법을 안내한 책 두 권을 아빠에게 건넸다. 믿을지 모르겠지만 열심히 공부했단다.
회상 너는 100일 때도 예뻤고, 돌 때도 예뻤다. 기어다닐 때도, 걸을 때도. 그런데, 지금 그때 사진 보니까 그냥 뭐 생기다가 만 거더라.
구출 네가 안긴 채로 뒤로 슬슬 넘어갔잖아. 아빠가 당연히 잡아 줄 것이라고 생각했니? 그래서 모른 척했다. 애절하게 아빠를 부르더구나. "아빠~" "구해줘요 해야지." "아빠, 구해줘요." 그래서 손가락 아홉 개를 펴서 '구(9)' 해줬지. 너는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깔깔거리며 웃느라고 뒤로 넘어가더구나. 유머 코드가 맞아서 다행이다.
친구 집 엄마에게 (친구)전화로 친구 집에서 놀아도 되는지 물었다면서? 허락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설레는 목소리였다는구나. 엄마는 늘 그렇듯 '첫 경험'에 콩닥콩닥, 두근두근, 안절부절. 껌딱지는, 울보는 그렇게 또 자라는구나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