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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2013년 7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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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구요 네가 예쁜 드레스를 입힌 인형을 쭉 내밀며 이쁘냐고 묻더라. 아빠는 솔직하게 인형보다 네가 더 예쁘다고 답했다. 모범답안이라고 생각했는데 네가 픽 웃는 이유가 궁금하더구나. "아빠가 말을 너무 재밌게 해서." 너도 부끄러워할 줄 안다는 것을 확인했다.
선택권 가족 나들이를 구상하는 아빠에게 너는 놀이동산 아니면 실내 놀이터로 가고 싶다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선택권은 아빠에게 맡기더구나. "운전은 아빠가 하니까." 다양한(?) 선택권을 얻었으나 뭔가 말린 듯한 이 느낌은 뭘까?
봤어? 물론 아침에 네가 일어날 때마다 아빠가 웬만하면 좋은 아침이라며 너를 토닥거리는 게 일상이기는 하지. 그런데, 그거 한 번 하지 않고 그냥 지나쳤다고 무척 피곤한 아빠에게 따지듯이 말하다니. "아빠! 나 여기 있는 거 봤어?" 그러니까 네가 그냥 먼저 다가와도 되지 않느냐고.
별명 슈퍼에서 또 빵을 사오는 네 엄마를 '빵순영'이라고 불렀다. 성큼 다가온 네가 왜 '빵순영'인 이유를 물었지. 빵을 좋아해서라고 답했다. 자지러지게 웃는 모습이 보기 좋더구나. 잠시 멈칫한 네가 아빠를 빤히 쳐다보는 게 순간 불길했단다. "아빠는 술승환?" 응용력이 제법이구나. 잘했다.
몽둥이 아빠 어렸을 때 뭐가 제일 무서웠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무척 쉬웠다. 아빠 엄마, 그러니까 네 할머니는 아빠가 잘못할 때마다 몽둥이를 들었거든. "그런데, 몽둥이가 뭐야?" 너를 곱게 키운 게 이렇게 쉽게 증명되더구나.
필승 일찍 일어난 네가 아침 인사를 하며 아빠에게 다가왔다. 그런 너를 무릎에 앉히고 느닷없이 가위·바위·보! 아빠는 이길 때마다 볼을 내밀어 뽀뽀를 받았다. 연속 패배에 침울했던 너는 모처럼 승리하자 자신 있게 볼을 내밀더구나. 아빠는 '할 수 없이' 네 볼에 뽀뽀했어. 그제서야 네 표정이 밝아지더라. 미안하다. 이거 사실 무조건 아빠가 이기는 게임이다.
순발력 외식하고 돌아오는 길에 뭐가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엄마에게 투덜거리는 너를 그냥 볼 수는 없겠더라. 일단 미끼를 하나 던졌지. "지금 아이스크림 사러 가는 길인데 엄마한테 밉게 얘기하면 돼, 안 돼?" 잠시 조용하던 너는 배시시 웃으며 "안 되지"라고 답하더구나. 그래, 그런 게 바로 '순발력'이다.
어른 차려놓은 아침밥을 먹지 않고 버티는 너에게 '언니가 되고 어른이 된다는 것'이 지닌 의미를 가르치고 싶었다. "언니가 되고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나이가 많아지고 몸이 커지는 것과 아무 상관 없어. 얼마나 많은 일을 혼자 할 수 있느냐는 거지. 혼자 할 수 있는 게 많아질수록 언니, 누가 도와주는 게 많을수록 아기." 너는 슬며시 숟가락을 들더니 밥을 먹더구나. 그나저나 좋은 세상 만난 것은 인정해야겠다. 아빠 어렸을 때 너처럼 굴다가 할머니께 얻어터진 적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