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편지/2013년 7살

(49)
새침 엄마 회사에서 울었다면서? 동료 한 분이 지나가면서 왜 이렇게 새침하게 앉아 있느냐고 물었던 게 원인이었다고. 아빠 생각에는 어른들이 조용한 아이에게 던질 수 있는 평범한 덕담이었는데. 너는 엄마와 단둘이 남았을 때 엉엉 울면서 하소연했다더구나. "사무실에 계신 분 말이 너무 심했어." "무슨 말?" "그거 있잖아. 예쁜데 가만히 있는 거." "새침하다는 말?" '새침하다'는 형용사에 '예쁘다'는 뜻이 있는지는 알 바 아니다. 이제부터 '새침하다'는 '예쁜데 가만히 있는 거'라고 정의하마.
편지 네가 아빠와 엄마에게 보낸 편지 잘 읽었다. 너에게 아빠는 재밌어서, 엄마는 낳아주고 도와줘서 고마운 존재였구다. 아빠와 엄마는 네 존재 자체가 고맙단다.
코스프레 네가 집에 들어오는 아빠에게 달려들며 방 청소한 것 봤냐고 물었다. 그제서야 방을 둘러봤더니 제법 정리가 잘 됐더라. 칭찬은 당연했지. "힘들었지만 괜찮았어. 당연히 할 일을 했을 뿐인데 뭐." 어울리지 않게 목소리를 깔면서 겸손 코스프레를 하더구나. 그런 가식적인 모습이 참 마음에 든다.
교육 엄마가 뒤늦게 아이패드 게임 하나에 빠졌구나. 펭귄이 막 달리는 게임. 패드를 좌우로 기울이면 되는 그거. 게임 왕고참(?)인 너는 평균 2000~3000m 달리더라. 어쨌든 1000m를 채 넘기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는 엄마에게 너는 조용히 다가가 목소리를 깔며 이렇게 격려했지. "처음부터 잘 할 수는 없지. 나도 엄마처럼 요리를 잘하지는 못하잖아. 엄마도 연습하면 나처럼 잘할 수 있을 거야." 너를 윽박지르지 않는 엄마 교육이 이럴 때 빛을 발하더구나.
몸치 대형마트 놀이터에서 공무더기에 묻혀 놀던 거 기억하니? 너는 갑자기 공을 하나 주워서 벽으로 던지더니 튀어나온 공을 후라이팬 같은 장난감으로 받아치려고 하더구나. 그 모습이 샤라포바 같았으면 괜찮았을 거야. 하지만, 튀어나온 공이 네 얼굴을 치고 딴 곳으로 튕겨나가고 나서 뒤늦게 팔을 휘두르는 모습은 좀 안쓰럽더라. 그나저나 놀이터에서 놀고 싶다던 너 때문에 아빠는 류현진 야구 중계를 휴대전화 문자 중계로 볼 수밖에 없었단다. 너는 재밌었니?
억울 엄마가 만든 피자를 먹고 기분이 좋아졌나 보구나. "엄마, 아빠! 내가 누구를 더 사랑하는지 알아?" 또 아빠를 엿먹이는 질문 아닌가 했다. 예상 외로 너는 모두 '똑같이' 사랑한다고 했지. 아빠는 재밌고 엄마는 너를 끝까지 보살펴 주기 때문이라고. 아빠는 그저 재밌을 뿐인데 엄마와 똑같아? 엄마가 꽤 억울하겠더라.
여자 기어이 약속했던 자전거를 사던 날, 너는 딱 7살 어린이답게 좋아하면서 아파트 단지를 한 바퀴 신나게 돌더구나. 그 뒷 모습을 보며 내일이면 이 모든 희열과 고마움을 하얗게 잊으리라는 것, 이 점이 너와 엄마가 닮은 점이라는 것, 그래서 남자 지구인이 늘 힘들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단다.
자전거 "엄마가 예지한테 안 해 준 게 뭐야?" 너에게 그토록 자애로운 엄마가 뭣 때문에 식탁에서 볼멘소리로 묻는지 몰랐어. 해 준 것은 늘 까먹고 안 해 준 것은 또렷하게 기억하는 게 7살 어린이잖아. 어쨌든 네가 훌쩍거리면서 '자전거'라고 했을 때 조금 뜨끔했단다. 게다가 "엄마가 돈이 없는 거는 알지만…"이라니! 아가, 이번 주말에 자전거 산다! 그나저나 혹시 2년 전 아빠가 '로보카 폴리' 세트 사준 것은 기억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