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17/09

(36)
높은 곳 고양이가 높은 곳을 향하려는 마음은 인간과 근본부터 달라. 우리는 높은 곳에서 세상과 대상을 넓게 바라보고 깊게 이해하지. 사색하면서 자신을 성찰해. 인간은 그냥 내려다보고 싶은 것 같아. 높이 오를수록 시야는 좁아지고 이해는 얕아지지 않나? 성찰 따위는 개뿔. 그러니까 아빠 양반, 내려다보지 말라고. 야옹.
배움 유튜브를 스승 삼아 아이패드로 뚝딱뚝딱 그림 그리는 솜씨가 제법이구나. 아주 마음에 들었다. 그림 그릴 때 즐겁다는 네 말에 더 감동했다. "아빠 뭐 해?""공부해.""기타 칠 줄 알잖아.""근본 없이 막 배웠거든." 아빠도 기본부터 배워볼까 싶어 동영상을 찾아봤단다. 어느새 부모에게 자극을 주는 아이로 자랐구나. 기특하다.
성숙 한 생명이 얼마나 성숙한지 알아채는 방법은 그렇게 어렵지 않아. 싫어하는 대상에게 어떤 태도를 보이는가로 쉽게 측정되지. 좋아하는 대상 앞에서야 뭔 말이든, 뭔 짓이든 못 하겠어? 그런 점에서 아빠 양반은 미숙해. 나도 아빠 양반이 날 싫어한다는 거 알면서도 멍멍이(아! 자존심) 소리 들어가며 다가가는데, 아빠 양반은 늘 싫은 티를 내거든. 미숙하고 또 미숙한 거지. 야옹.
박스 어떤 인간은 고결한 고양이가 좁은 박스에서 뒹구는 게 우스운가봐. 더 우스운 것은 인간이 쓸데없이 넓은 상자에서 사는 것인데. 아빠 양반이 그러더군. 한 평은 어른 인간 한 명이 누워서 팔다리 휘저어도 되는 넓이라며? 그런 점에서 박스는 고양이에게 한 평이야. 그 한 평에 담긴 소중함과 가치를 우리는 잘 알지. 30~40명이 누워도 되는 박스에 살면서도 만족할 줄 모르는 인간들이 그런 것 좀 알았으면 좋겠어. 큰 기대는 않는다만. 야옹.
두 발보다 네 발 나는 가끔 아빠 양반이 네 발로 버티고 꼼지락거릴 때가 좋아. 팔굽혀펴기라던가? 덩치 차이는 크지만 눈높이는 대충 맞거든. 모든 소통은 눈높이를 맞추면서 시작한다는 거 정도는 인간들도 알지? 어쨌든 비효율적이며 한심하기 짝이 없는 두 발 걷기보다 훨씬 탁월하며 우아한 네 발 걷기 장점도 알았으면 좋겠어. 그러면 인간도 품위 좀 있어 보이려나. 야옹.
묘복(猫福) 아빠라는 양반이 아침에 일어나면 화장실로 향한다는 것쯤은 이미 알아. 간단한 스킨십으로 생명끼리 교감하며 하루를 시작했으면 하는 나는 화장실 문 앞에서 보통 이런 자세로 엎드리곤 하지. 아빠 양반, 한 번 쓰다듬고 지나가라고. 그런데 저 인간이 뭐라는 줄 알아? 비키라는 거야. 발 닦는 매트인 줄 알았다고. 그러면서 발로 쑥 미네. 내가 성숙하지 않은 고양이었다면 당장 깨물었겠지. 아빠 양반은 묘복(猫福)이 있어. 야옹.
가방 "여보, 요즘 애들 들고다닌 거 있잖아. 젤리 같은 거.""이거? 액체괴물." 엄마가 대답하기 전에 먼저 가방에서 꺼내더구나. "어, 혹시 손에서 막 돌리는 그런 것도 있어?""아, 스피너." 또 가방에서 꺼내더구나. "가방에 없는 게 없네. 너 들고다니는 선풍기...""응, 이거? 헤헤." 도대체 그 보조가방에 없는 게 뭐냐? 그나저나 책은 어디에 담고 다니니? 참 신기하면서 궁금했단다.
급식 사람이 참 한심하다는 것은 무상급식 논란만 봐도 쉽게 알 수 있어. 우리 고양이 세계에서 급식은 간단해. 집안에서 가둬 키우면 무상급식이고, 집밖에서 자기 마음대로 살면 스스로 해결해야 해. 애초에 '유상급식' 자체가 존재하지 않지. 학교 안에서 가둬 키우면 무상급식, 학교 안 다니면 알아서 해결하는 거야. 가둬놓고 밥값 받는다고? 이게 말이 돼? 저 몰상식한 아빠도 그 정도는 알아. 나에게 밥을 주면서 밥값을 일부라도 받는 무식한 짓은 안 한다고. 그나저나 아빠 양반,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든다는데 지금 뭐하는 거야? 야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