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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2016년 10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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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창력3 요즘 노래 연습이 한창이더구나. 누덕누덕 스타카토? 아빠 눈에는 네가 뭘 해도 이뻐 죽겠다만 그렇다고 우리 딸이 노래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단다. 그런데 이 노래는 애초에 키가 높더구나. 초반부터 네가 가성을 남발하는 것을 보니 말이다. 게다가 클라이막스에서는 가수조차 가성을 남발하는 고음 부분이 있는데, 가성에 또 가성이라… 힘들었지? 아빠도. "아빠, 노래 괜찮았어?" 수줍게 묻는 네게 대놓고 진심을 말할 수가 없었다. 이빠는 남을 다치게 하지 않는 거짓을 사랑한다. "노래 재밌네. 잘 불렀어!""히히, 고음 부분에서 살짝 갈라졌는데." 아가, 고음은 물론 초반부터 음이탈은 꾸준했단다. 그래도 평정심(?)을 유지하는 게 너에 대한 사랑을 엿볼 수 있는 작은 증거지.
친절 아빠가 간혹 밥을 먹으면서 밑도 끝도 없이 질문을 던지잖아. 그래야 좋은 아빠라네. 좋은 아빠와 살고 싶다면 네가 참아라. 그나저나 외국인을 만날 때 가장 중요한 게 뭐냐고 물었을 때 늘 그렇듯 대단한 답을 기대했던 것은 아니었단다. "친절과 소통하려는 노력요." 물론 이 정도 답도 더 바랄 것 없이 감탄스러웠어. 그래도 친절이 소통하려는 노력보다 앞인 이유는 궁금했지. "소통을 한다고 해서 기분이 좋을 수는 없잖아. 서로 기분이 좋으려면 친절해야할 것 같아." 진짜 나이스다!
액션 집더하기 마트에서 무빙워크를 타고 내려오다 아빠가 차키를 떨어뜨렸잖아. 손잡이 바깥쪽으로. 다행히 더 아래층으로 떨어지지는 않았지. 3층에 도착하자 차키와 아빠를 번갈아 보며 '어쩔~' 하는 네 표정이 순간 웃겼단다. 5m 정도를 거꾸로 뛰어올라간 아빠는 다시 내려오면서 차키 근처에 이르자 상체를 숙여 손잡이 너머 키를 낚아챘지. 영화 같은 장면 아니었니? 이를테면 절벽에서 떨어지는 여자 주인공을 헬기에서 낚아채는 남자 주인공 같은 모습 말이다. "오~ 아빠, 전에도 그런 적 있었어?""아니, 처음인데.""와~ 대박!" 대박? 아빠는 네 표정과 표현이 대박이었다.
이혼? 나쁜 꿈을 꿨다며? 하루종일 표정이 어둡더구나. 엄마와 아빠가 꿈에서 이혼을 했다고? 네 문제로 다툼이 좀 있었고. 그나저나 새 엄마 같은 사람도 봤다면서! "그래, 꿈에서 힘들었겠구나. 새 엄마는 예뻤어?""아니, 엄마보다 훨씬 안 예뻤어." 그래? 훨씬 예쁘지 않았단 말이지. "예지, 아빠 이혼하는 일은 없을 거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다부진 네 표정을 보면서 새 엄마 미모 따위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단다.
공감 얼마 전 엄마 회사에 온 네가 깔짝깔짝 세월호와 리본을 그려 엄마 자리에 꽂아놓았다면서? 아가, 아빠는 다른 사람이 아는 것은 물론 모르는 것까지 네 매력을 잘 안다. 그 중에서도 아빠가 가장 사랑하는 네 매력은 나 아닌 다른 것에 공감하는 능력이란다.
피구 반 대항 피구 대회가 한창이라면서? 첫날 경기 장면을 어찌나 생생하게 묘사했는지 엄마에게 전해 들었는데도 동영상을 보는 것 같더구나. "엄마, 그런데 1반 애들 진짜 못해." 승리에 취한 나머지 평소 하지 않던 핀잔까지. 그런데 둘째 날부터는 피구 얘기를 일절 하지 않았다면서? 결과를 이미 예측한 엄마가 넌지시 물었더니 낯선 피구 규칙을 늘어놓으며 서럽게 심판 선생님 얘기만 한참 했다고. 많이 억울했나 보구나. 그나저나 엄마와 아빠는 20세기 국민학생이고 너는 21세기 초등학생인데 어쩌면 그렇게 똑같은지 모르겠다.
실수 문방구 앞에서 언제까지 만나자며 재잘재잘 통화하는 모습이 예뻤단다. 단짝 친구라는 게 참 좋지? 학교까지 5분이면 가는데도 2분 30초를 함께 걸어야 하니 말이다. 언제 나올 거냐고 묻던 너는 갑자기 두리번거리면서 방 이쪽저쪽을 뒤지더구나. 엄마와 아빠는 표정으로 뭘 찾느냐고 물었지. 그런데 뭐? 전화기를 찾는다고? 너 지금 통화하고 있잖아! 민망함을 감추려는 큰 웃음이 어색했다. 너는 도망치듯 학교로 출발하더구나. 모처럼 아침부터 큰 웃음을 얻었다.
장난 "아빠~." 화장실을 다녀온 너는 앞에서 기다리던 아빠를 향해 껑충껑충 뛰며 다가오더구나. 낯선 공중화장실 입구에서 기다렸으니 고마웠겠지. 세 걸음 정도 거리가 되자 폴짝 뛴 너는 공중에서 아빠 얼굴을 향해 손을 쫙 펴더군. 물론 꽤 우아한 연결 동작이었단다. 얼굴 전체에 쫙 펴지며 타다닥 부딪히는 물방울만 아니었다면 훨씬 더 감탄했을 거야. 도대체 그런 장난은 어디서 배우니?